주유소 ‘내일 가격 표시제’ 도입 논란

사진= 한국주유소협회

정부가 추진 중인 ‘내일 가격 표시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반면 주유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 고속도로 주유소 100곳을 시작으로 ‘내일 가격 표시제’를 시범 도입한다. 소비자가 다음 날 적용될 휘발유·경유 가격을 미리 확인해 주유 시점을 선택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유가 변동 정보 접근성을 높여 시장 투명성을 강화하고 주유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이 방안은 지난 3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민 체감형 서비스 개선방안’의 하나로 포함됐다. 현장 안내판·전광판 등을 통해 가격이 표시되며 향후 도심 주유소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소나타 차주 이 모(44·대전 동구) 씨는 “내일 가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할 때 넣어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그러나 “전형적 탁상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는 정유사에서 매일 기름을 공급받지 않고 평균 2~4주 간격으로 재고를 보충한다”며 “하루 단위로 내일 가격을 고지하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강제하는 셈으로 실효성이 낮고 현장 부담만 커진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주로 중동 두바이유를 수입하지만 정제유(휘발유·경유 등) 출고가는 아시아지역 기준인 싱가포르 현물가격(MOPS)에 연동된다. 국제유가와 환율이 매일 변동하더라도 주유소는 평균 2~4주 단위로 재고를 들여오기 때문에 판매가격은 ‘재고 평균원가+마진’ 구조로 완만히 움직인다. 이 때문에 내일 가격 고지가 국제 시세 변동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충남도민 최 모(50) 씨는 “주유소가 2~4주 단위로 공급받는다고 하면서 왜 국제유가가 오르면 곧바로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재고가 많다며 늦게 내렸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내일 가격 표시제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가격 결정 과정이 합리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외에서도 내일 가격을 표시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의 주유소 가격 공개 플랫폼 ‘FuelCheck’는 모든 주유소가 가격 변경 후 30분 이내에 신고해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서호주(WA)의 ‘FuelWatch’의 경우 오후 2시까지 다음 날 가격을 신고하고 이를 24시간 고정하도록 해 ‘예고+고정’ 모델을 운영한다. 우리 제도가 ‘내일 가격’만 알리는 수준이라면 서호주는 ‘내일가 고시+하루 고정’을 통해 예고 가격을 보장한다. 대전의 한 화학공학과 교수는 “시범 대상이 고속도로 주유소인 만큼 한국도로공사의 유가 공개 API와 노선별 가격 데이터를 연동하면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향후 민간 지도·내비 앱으로 확산된다면 주유업계에 가격 인하 압박을 주고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협회는 차라리 과거 ‘석유류 가격고시제’를 부활하자고 요구 중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을 매일 고시해 전국 주유소가 동일한 기준으로 판매가를 책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협회는 “정부가 책임 있게 가격을 고시해야 소비자 혼란도 줄고 주유소 부담도 완화된다”는 입장이다.

정은한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