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미국과 중국의 G2 갈등이 최근 절정에 달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3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ICBM 등을 비롯한 첨단 무기를 공개하면서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방어만 하고 싶지 않다. 공격도 원한다"며 국방부의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양국의 갈등이 한반도의 신냉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시 주석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서는 모습을 연출하며 북중러 결속을 통한 반미 연대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북한도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는 미국과 대화에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앞세워 북한의 문을 두드리려던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피스메이커'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오는 10월 말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신냉전 고착화를 방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시진핑, 심상치않은 미국 겨냥 '전지구 사정권' 첨단 무기 공개…트럼프, '전쟁부' 부활 추진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시대 열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무역 갈등은 최근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으나 양국의 갈등은 더 심각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기념사에서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Win-win)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인민은 역사와 인류 문명의 진보라는 올바른 길에 굳건히 서서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하며, 세계 각국 인민과 함께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날 중국 열병식에는 ICBM과 '괌킬러' 등 미국을 겨냥한 첨단 무기가 대거 공개됐다.
즉, 막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평화를 지향하지만 미국과 대결이 심화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시 주석의 이날 발언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부 부활'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방어만 하고 싶지 않다. 공격도 원한다"며 국방부의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시사했다.
아어 "우리가 1·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때 (국방부를) 전쟁부라고 불렀다"며 "모두가 전쟁부 시절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승리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 명칭 변경 의지를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참석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헤그세스 장관을 '전쟁 장관'(Secretary of War)으로 부르면서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국방 장관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세계 1, 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거론하면서 그 불씨는 한반도를 향하게 됐다.
시 주석은 전날 열병식 망루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선 것은 탈냉전 뒤 처음으로, 옛 소련 시절까지 포함하면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이다.
이를 두고 외교 전문가들과 외신은 한목소리로 '한미일 vs 북중러'라는 '신냉전'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AFPBB는 "톈안먼에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나란히 오른 것은 1959년 이후 66년 만의 현장"이라며 이는 신냉전 시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연출이라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북·중·러 연대를 전 세계에 강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해석했다.
전문가 "北, 핵보유국 중러와 나란히…비핵화 더 어려워져"
이처럼 신냉전 체제가 본격화 될 경우 북한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중러 결속이 강화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협상력이 강화돼 굳이 미국과 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연합뉴스에 "김정은은 외교 형세가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우호적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한 번에 한 국가씩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엘런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국장은 "이 회동은 향후 비핵화 대화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 중국 정상 옆에 서서 북한이 이들 국가와 나란히 핵보유국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다시 보낸다"고 말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의 열병식 참석 목적은 시진핑과 관계를 강화하고, 푸틴과 관계를 재확인하며, 다른 반미 독재 국가들과 공조하는 것이다. 북중러 3국 정상의 회동은 트럼프가 북한과 어떤 비핵화 합의를 하든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와 인정이 필요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여 석좌는 "김정은은 푸틴과 시진핑을 만남으로써 국제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한다. 특히 김정은이 어느 시점에 트럼프를 만나기로 결정할 경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라스카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 조교수는 "김정은이 시진핑과 푸틴과 함께 서는 것은 북한이 고립되지 않았고 반미 블록의 구성원이라는 이미지를 투사한다. 이는 김정은에게 강력한 우방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 북한 내에서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에는 북한이 더 큰 (지정학적)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고 분석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중국과 긴장된 관계 회복에 도움 되고, 트럼프 집권 하의 미국과 문제가 있는 여러 국가와의 관계에서 북한의 지위를 개선할 수도 있다. 또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대화 재개 여부를 고려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서울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한미일 협력 강화로 대응하나…日, 독자외교도 검토
외교가의 관심은 북중러 결속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열병식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당신들이 미국에 대항할 작당 모의를 하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적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를 내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김 위원장 등 권위주의 국가의 '스트롱맨'들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굳건히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가 자신에게 한데 뭉쳐 맞서는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역설 화법으로 실망감과 함께 불편함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의 역효과가 드러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동맹이나 적국을 가리지 않고 부과한 관세 정책으로 세계 무역 질서를 무너뜨린 신(新) 보호주의와 약소국에 대한 횡포, 유엔 등 국제기구 무시, 미국의 대외 원조프로그램 폐기 등을 통해 전 세계의 반감을 키우고 더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게 한 것이 중국의 위상을 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최대 동맹국인 한국, 일본과의 3자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일본과는 이미 자칫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었던 관세 및 무역 협정을 큰 틀에서 합의한 만큼 한미일 안보 분야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중국 견제 및 북중러 연대 대응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동맹간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일본 내에서는 '독자외교'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대한 관심을 갖고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정보 수집, 분석에 임할 것"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우호국에도 고관세를 부과해 각국과 관계가 순조롭지 않다"며 일본 정부가 독자 외교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도 일본 정부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올가을 펼쳐지는 다자 외교 무대에서 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중국과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복잡한 국제정세 예의주시"
시험대 오른 이재명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경주 APEC '분수령'
대통령실은 전날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만나는 모습이 포착된 것과 관련해 "국제 정세가 워낙 복잡한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중러 3국의 밀착 움직임이 빨라진다는 분석에 대해 대통령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실의 평가는 특별히 없다"며 이같이 답했다.
강 대변인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요 국가들에 대해 늘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며 "(과거에도 이 같은 입장이었으며) 여기서 입장이 달라진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한반도 문제를 두고 미국에 '피스메이커' 역할을 권하며 자신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구현을 위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만나달라'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론'을 폈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후 8일 만인 이날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북·중·러 정상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연대를 과시하면서 이 대통령의 구상에 차질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북·중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중관계가 복원되면 중국이 북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려고 나서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중 갈등을 완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APEC을 전후로 판문점 등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이 성사된다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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