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예술이 사물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그녀는 유물이나 전통적 물건을 ‘과거의 증거’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 사물들이 여전히 지금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아주 부드럽게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사물에 억지로 생명을 부여하거나 극적인 서사를 덧입히지도 않는다. 그녀는 마치 조용히 곁에 앉아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관객에게도 되돌아온다.
우리는 익숙하다고 믿었던 사물의 역사, 보존의 의미, 그리고 시간의 감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유는 단지 작품 속에 그려진 이미지나 설치의 구성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사물을 다루는 방식, 전시 공간을 사용하는 태도 자체에 녹아 있다. 소금을 머금은 콘크리트 조각이나 레진에 고인 강우수처럼 그녀는 ‘시간이 통과하는 물질’을 즐겨 쓴다. 이 물질들은 작가의 손을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증발하거나 굳어가며, 하나의 생을 이어간다. 그 안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있다. 이는 전통적 보존 개념과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정지된 보관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사물의 존재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녀의 작업은 시간을 뒤로 밀지 않고, 오히려 당겨 앉히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과거의 유산이 단순한 박제물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도록 매만진다. 특히 보존과 전시라는 문화기관의 기본적 태도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미학적 가능성을 연다. 그녀는 유물 하나하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사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 말은 유물을 넘어,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에 대한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다가올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이처럼 시간의 층위와 제도의 틈, 그리고 사물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고민해온 그녀의 작업이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놓이게 될지를 보여줄 것이다. 문화적 맥락이 다른 장소에서 그녀의 사물들은 어떤 언어로 읽힐까.
또 그 사물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지속’을 발견하게 될까. 빠르게 사라지고 소비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라 포라스-김이 만들어낸 느린 사물의 언어는, 예술이 아직도 시간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