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국내 조선업계가 ‘사람 손’에서 ‘로봇 손’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인력난과 고령화, 청년층 기피가 겹치면서 고강도·고위험 작업에 로봇과 인공지능(AI)이 본격 투입되는 추세다. 하지만 기업마다 따로 기술을 개발·도입하다 보니 중복투자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어, 이를 묶어 표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조선업 근로자 수는 약 11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11만4000명)보다 2.6% 늘었다. 그럼에도 ‘미충원 일자리’는 약 7000개에 달했고, 미충원율도 지난해 15.3%에서 올해 17.1%로 높아졌다. 이는 전 산업 평균(7.7%)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여전히 현장 인력난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특히 선박 건조의 핵심인 용접·도장·배관 분야 숙련공은 빠르게 줄고 있다. 청년층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장시간 노동을 이유로 기피하고, 기존 숙련공은 은퇴 연령에 다다르면서 공백은 더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HD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에서 ‘스마트 야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선체 블록을 용접하고 이송하는 과정에 다관절 로봇과 자동화 장비를 투입해 공정을 단축하고 품질을 균일화했다. 기존에는 용접공 수십 명이 동시에 투입되던 작업을 로봇과 소수 인력으로 대체하면서 생산 효율과 안전성을 확보했다. 앞으로는 AI 기반 품질 관리 시스템까지 결합해 단계적 자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AI 용접로봇을 선박 전용 라인에 적용했다. 로봇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변형을 학습하고 용접 궤적을 보정해 숙련공 수준의 정밀도를 구현한다. 불량률은 기존 방식보다 크게 낮아졌으며, 현재는 선체 용접을 넘어 배관, 철 구조물 제작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화오션은 거제조선소에 협동로봇을 적극 도입했다. 협동로봇은 작업자와 가까이서 함께 일할 수 있어 도장·절단·내부 배관 등 사고 위험이 큰 공정에 활용되고 있다. 좁은 선체 내부나 유해물질이 많은 공간에서 로봇이 선행 작업을 맡으면 인력은 후속 품질 관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전사고를 줄이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숙련공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현장에서는 로봇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인력을 보완하고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노무 환경 변화도 로봇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원청까지 확대했다. 원청의 노무 부담이 커지면서 조선사들은 불확실성이 큰 인력 구조보다 자동화 설비 투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건비 상승과 협력업체 관리 리스크가 커질수록 로봇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별로 분절된 개발은 한계로 지적된다. 로봇 활용 방식과 공급망이 회사마다 달라 상호 호환성이 떨어지고, 표준화 부재로 비용 증가와 연구개발 중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이 공동 연구센터를 세워 기술을 통합했고, 중국은 국영 CSSC가 국가 차원에서 공급망을 일괄 관리하고 있다. 한국도 개별 기업의 실험 수준을 넘어, 이러한 방식처럼 기술을 묶고 표준화해야 효율성이 높아지고 산업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수 인하공업전문대학교 조선기계공학과 교수는 “개별 조선사가 자체적으로 로봇을 개발·도입하는 현 구조는 중복투자와 기술 단절을 초래해 산업 전체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로봇 기술이 특정 기업의 내부 장비에 머물지 않고 업계 전반에서 활용되려면 정부가 표준화·통합 체계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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