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탄생한 금융위원회 체제가 17년 만에 전환점을 맞았다. 정책과 감독을 한데 묶었던 ‘일원화’ 구조에서 다시 분리 체제로 돌아가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금융 거버넌스의 권한 지도와 정책 운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금융산업의 방향성과 감독 철학을 새롭게 규정할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민주당과 대통령실은 오는 7일 고위당정협의에서 금융위원회 해체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핵심 내용은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원과 결합해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별도 기관으로 승격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된다.
금융 거버넌스는 단순한 기관 존폐를 넘어, 금융정책 설계·집행과 소비자 보호 방식까지 포함하는 제도적 지배구조를 의미한다. 권한 배분에 따라 정책 방향과 감독 강도가 달라지고, 나아가 금융산업 전반의 질서가 재편된다는 점에서다.
해체론과 존속론 사이…17년 실험 ‘종지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금융 거버넌스에 근본적 전환점을 가져왔다. 당시 정부는 분산된 감독체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책과 감독의 일원화라는 실험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금융위원회였다.
17년이 지난 시점에서 해당 실험은 전면 재검토 국면에 들어섰다. 법제 개편을 둘러싼 여야 합의가 불투명한 가운데, 민간기구 감독권 부여 논란까지 제기되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과 감독을 동시에 수행하다 보니 상호 견제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금융위 해체론은 단순한 행정 효율성을 넘어 정치적 계산과도 얽혀 있다. 새 정부 초기 해체론이 우세했지만, 최근 국정기획위 국민보고대회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지며 존속론이 부상했었다.
이억원 전 기재부 차관이 금융위원장, 이찬진 국정기획위 분과장이 금감원장으로 내정되면서 시나리오는 한층 복잡해졌다.
금융위는 취약계층 채무조정, 생산적 금융 전환 등 대통령 공약을 실제로 집행하며 스스로의 역할과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금융위 해체론을 수용한 배경은 제도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정 간 합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금감원은 달라진 환경 속에서 발빠르게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찬진 원장은 은행의 고금리 관행, 보험사의 불완전판매 문제를 공개 비판하며 ‘소비자 중심’ 감독 기조를 강조했다.
특히 상품 설계 단계부터 소비자 권익을 반영해야 한다는 발언은, 향후 금융소비자보호원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도 읽힌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금융정책은 위원장 소관이고 금감원은 집행기관”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제도가 바뀌면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희석된다.
소비자보호원 분리, 실효성 담보가 관건
주요국의 금융감독 체계는 완전 통합형과 기능별 분리형이 혼재한다. 영국은 2012년 FSA를 해체하고 건전성감독청(PRA)과 금융행위감독청(FCA)으로 나눠 전문성을 높였다. 독일과 일본은 여전히 통합 모델을 유지하지만, 독일은 BaFin 내 부문별 전문조직을 운영한다.
한국 모델은 영국과 유사하면서도 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사실상 중앙정부의 경제정책 조정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실제 실행까지는 만만치 않은 절차가 남아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뿐 아니라 금융위원회 설치법, 은행법 등 다수의 법률 개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도 내부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새 체계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달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지만, 여야 이견과 절차적 부담으로 1년 이상 소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이 “열흘짜리 금융위원장 청문회는 코미디”라고 반발한 것에서도 갈등의 단면이 드러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이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 강화를 내세우지만, 금감원 내부에서는 ‘콜센터 기능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감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에 즉각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제도의 실효성은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을 두고 상반된 전망을 내놓는다. 서울 소재 대학교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과 감독을 분리하면 전문성은 높아지지만 정책 일관성 면에서는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경제부 중심의 정책 기능은 거시경제 운용과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직 개편은 2008년 이후 이어진 금융당국 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정책·감독 기능 재편과 소비자 보호 독립성 확보 여부가 향후 금융산업 질서와 실효적 소비자 보호 체계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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