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구 선명회 회장 "아프리카 보다 옆에서 굶어 죽는 내 동포 먼저 쌀 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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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구 선명회 회장 "아프리카 보다 옆에서 굶어 죽는 내 동포 먼저 쌀 보내야"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9-04 06:20:00 신고

 흥분도 잠시, 1226일 잠실 팔레스호텔 커피숍에서 우리와 만난 관계기관 분들과 이윤구 회장의 부인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렸으나 고 이윤구 선명회 회장(월드비전 5대 회장) 은 반드시 가봐야 한다며 커피숍을 나가 버리신다. 뒤이은 침묵과 무거운 분위기 끝에 관계기관 분들은 나에게도 나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나 역시 가겠다고 하니 이번엔 관계기관 높은 분이 화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신다. 남아있던 관계기관 분이 소신껏 하되 돌아오면 고생할 각오는 하라고 했다.

 호텔 문을 나서는데 부모님 얼굴과 집사람, 애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또 불효 하게 되는구나. 구속되면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겠구나. 가뜩이나 첫 사업 군납했던 게 망가져서 집의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닌데... 한숨만 나오고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이 회장님과 5월부터 상의하며 시작된 이 일에 대해 먼 훗날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귀한 내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아프리카에 쌀을 보낼 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굶어 죽는 내 동포에게 갖다줘야 한다라고 매번 강조하셨다.

 나도 어느덧 이 일은 옳은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부연하자면 처음에 이 일은 내가 북한에서 물수건 반입을 위해 사업자금을 구하다가 시작됐다. 그때 급하게 1억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명회 이윤구 회장을 찾아가 자금 융통을 부탁했다. 다행히 이회장님이 돈을 융통해 준다 해서 북한측과 팩스를 부지런히 교환하면서 물수건 사업을 진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북한과의 무역은 처음이라 어떻게 결제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그렇다고 우리나라 은행에서 북한은행에 신용장을 열 수도 없었고 해서 고민하고 있던중 면사를 보내주면 북측에서 임가공형식으로 물수건을 만들어서 보내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또 이후엔 옥수수 500톤을 중국에서 사서 보내주면 물수건을 보내 주겠다는 쪽으로 차츰 내용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면사 대신 옥수수로 내용이 변경되는 순간 이윤구회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때부터 물수건 사업이 아닌 식량지원 사업쪽으로 사업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진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급기야 23일 평양으로부터 북경에서 만나자는 통보까지 온 것이다.

나는 이 회장과 북경에 가기 전에 이미 친구 회사인 코스모스()의 직원으로 해서 1994년 첫 접촉승인을 받아뒀다. 중국에는 1992년 수교 이전에 호기심 삼아 가 봤었는데 이번에는 사업차로 간 것이다. 수교 이후라 이때는 우리나라의 아시아나 비행기가 천진을 오가고 있었다.

 팩스를 받은 지 일주일후인 1228일 북경 장성호텔에서 선명회(월드비전) 이윤구 회장, 삼천리 김봉익 사장과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고민발) 이성록 회장(부총리급)을 만났다. 회담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고성이 오가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다시 회담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마지막 날엔 남과 북이 합의에 이르면서 서로 울면서 얼싸안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평양의 결심을 받고서야 합의서에 서로 서명했다. 이후 이 일은 나에게 북한과 무역에 있어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고 나의 인생도 돌아갈 수 없는, 화살이 시위를 떠난 형국이 되었다.

 당시 재미있는 일화라면 김봉익 사장이 첫인사에서 나를 보자마자 대뜸 너 안기부지?”라고 첫 질문을 그리 했는데 내가 곧바로 저 아닌데요라고 답한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23일간 회담을 하고 이윤구 회장은 북경에서 미국 선명회(월드비전) LA본부로 떠나시면서 국제선명회(월드비전)와 고려민족산업발전협의회가 쓴 합의서 한 부를 복사해주며 이 합의서 복사본은 너에게 아마 평생 기념이 될 거다라고 하셨는데, 진짜 그리 된것 같다.

앞줄: 이석채, 전금철/뒷줄 김봉익 (안경)/1995년 북경
앞줄: 이석채, 전금철/뒷줄 김봉익 (안경)/1995년 북경

이번에 자서전을 쓰면서 그동안 북한 식량 지원에 관한 모든 과정을 나로서는 처음 밝히고 미공개 서류도 최초로 공개한다. 고 이윤구 회장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내가 이 일에 관해 거론하면 괜한 내 공치사가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 회장님의 공적에 누가 될까 싶어 입을 아예 봉하고 살았다.

[남북경협 기업인의 도전과 좌절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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