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르포] “죽기 전까지 집이 무사하길”…서울 마지막 달동네 ‘개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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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 르포] “죽기 전까지 집이 무사하길”…서울 마지막 달동네 ‘개미마을’

투데이신문 2025-09-03 17:29: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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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판잣집과 아파트의 전경. ⓒ투데이신문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판잣집과 아파트의 전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한채연 기자】마을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 위치한 녹슨 판잣집과 한편에 가득 쌓인 연탄. 어느 시골 마을이 아닌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개미마을의 풍경이다.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도시빈민들이 천막집을 지어서 모여 살기 시작하며 형성된 달동네다. 마을 끝자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낮은 지붕의 판잣집과 서울의 빽빽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렇듯 서울에 있지만 서울과는 시공간이 분리된 듯한 개미마을에는 약 150명의 주민이 터를 잡고 있다.

홍제역 1번 출구에서 개미마을까지 운행하는 서대문07번 마을버스. ⓒ투데이신문
홍제역 1번 출구에서 개미마을까지 운행하는 서대문07번 마을버스. ⓒ투데이신문

마을 진입 방법은 ‘서대문07번’ 한 대뿐

지난달 27일 홍제역 1번 출구에서 개미마을로 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인 서대문07번 마을버스는 승객 4명을 싣고 출발했다. 문화촌현대아파트를 지나 오동나무앞 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에는 승객 중 가장 나이 많은 노인 하나만 남았다. 금강빌라와 인왕중학교부터 시작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덜컹거렸다.

버드나무가게, 삼거리연탄가게 정류장을 지나자 이내 종점인 개미마을 정류장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불과 10분 전까지 아파트 단지를 지났던 버스는 인왕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개미마을 끝자락에 위태롭게 정차했다.

2014년부터 서대문07번 마을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운전기사 장득구(74)씨는 “승객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개미마을 바로 밑에 있는 금강빌라에 사는 사람 말고는 이곳까지 오는 젊은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장씨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에는 두 대의 버스가 운행되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한 대의 버스만이 홍제역과 개미마을을 오간다.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 마을버스 업체의 경영난이 지속되고 있어 이곳 주민들은 하나 뿐인 교통수단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 아래 골목 입구에서 만난 60대 주민 A씨는 매일 서대문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귀가한다고 했다.

그는 “평소 배차간격은 20분 정도 된다. 자가용이 없으면 마을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며 “서대문07번은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주민이 실제 거주 중인 개미마을 집의 모습. 건물 입구에서는 집의 수리를 위해 쌓아둔 자재들과 무허가건축물에 등재되는 건물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투데이신문
주민이 실제 거주 중인 개미마을 집의 모습. 건물 입구에서는 집의 수리를 위해 쌓아둔 자재들과 무허가건축물에 등재되는 건물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투데이신문

대부분 판잣집…무허가건축물이라 보수도 못 해

열악한 건 교통뿐만이 아니다. 개미마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은 대부분 판잣집이거나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하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비를 막으려 판자 위에 천막을 덧대어놓은 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아직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집이 있어 개미마을 정류장 맞은편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용화장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부실한 주거 탓에 개미마을은 폭우 등 기후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개미마을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권용원(77)씨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잘 봐주질 않더라”며 “우리도 국민인데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세심하게 살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붕괴 위험이 있어도 개미마을 주택은 무허가건축물이라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라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는 폭우가 올 것을 대비해 올해 봄 처마 밑에 물받이를 설치했다가 서대문구청의 요구로 철거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권씨는 “어디서 신고가 들어간 건지는 몰라도 구청에서 보더니 불법이라며 철거하라고 하더라. 살기 위해 겨우 1m짜리 물받이 설치한 건데 미치겠다”며 “언젠가는 기둥 자체도 흔들거리고 진짜 위험해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처럼 개미마을 주민들은 건물 수리를 스스로 하고자 해도 건축법을 어겼다며 철거 명령이 떨어지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씨는 이런 간단한 보수마저도 자식 손을 빌려야만 하는 노인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고 탄식했다.

버려진 철재와 깨진 창문이 보이는 수많은 빈집을 지나 도착한 마을 초입 구멍가게 안에는 한낮의 열기에도 축축한 공기가 맴돌았다.

50년 넘게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B씨(84)는  “재개발 이야기는 40년도 더 됐는데 달라지는 건 없고 급한 건 혼자 손 볼 수밖에 없다”며 “천장에 물이 새는 바람에 빚을 내서 지붕을 고쳤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젠 죽기 전까지 집이 무사하길 바라면서 빚 갚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개미마을 건물 외부에는 부탄가스가 자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개미마을 건물 외부에는 부탄가스가 자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도시가스 공급 안 돼 부탄가스·연탄으로 생활

개미마을의 모든 집은 부탄가스와 연탄을 사용한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집에서 사용하던 부탄가스가 폭발해 80대 노인이 숨진 일이 있었다.

이에 서대문소방서는 지난 5월 주민들에게 소화기를 보급하고 건물마다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등 안전 점검을 벌였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점검에 불과했다. 마을에는 불이 붙기 쉬운 목재로 지어진 집이 많은 데다 부탄가스와 연탄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주민들은 여전히 화재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C씨는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불이 날 뻔했다. 차단기가 오래돼서 주변 나무가 다 타버렸는데 몇 달 전에 소방서에서 왔다 갔을 땐 이런 부분은 봐주지 않았다”며 “여기 다 노인인데 예방 교육이 무슨 소용이겠나. 점검하고 끝이 아니라 꾸준히 살펴봐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재개발 논의만 40년째...“주민들 고충은 계속”

개미마을의 개발 논의는 수십년 째 나오고 있지만  주민들은 입을 모아 “이제는 기대하지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개발 논의는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이 확정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당장 실질적인 주거 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전무한 탓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점심시간이 되면 경로당에 모여 함께 밥을 지어먹을 만큼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권씨는 “집집마다 누가 사는지 다 안다. 요즘 시골 어딜 가도 이렇게 지내는 동네는 없을 거다”고 했다. 

이어 “옛날부터 재개발 이야기만 나오면 사기꾼 같은 사람들만 몰려오고 표가 필요할 때면 정치인이 다녀갔다”며 “그렇게 한바탕 바람이 불고 나면 결국 이곳에는 아무도 관심 없고 주민들 고충은 그대로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개미마을은 2025년에도 1960년대 도시빈민들이 모여들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40년간 부동산 개발업자, 정치인, 기자 등이 수없이 다녀갔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개미마을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지금도 소망하는 것은 비가 내려도 지붕 아래 물이 새지 않고 눈이 와도 마을에 고립되지 않는, 집다운 집을 가지고 싶은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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