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移민국] (5) '베트남의 세종대왕' 후손이 사는 경북 봉화···농어촌에 퍼진 아시아 이주민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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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移민국] (5) '베트남의 세종대왕' 후손이 사는 경북 봉화···농어촌에 퍼진 아시아 이주민 커뮤니티

여성경제신문 2025-09-03 09:00:00 신고

3줄요약

2024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에 이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다민족 사회이자 글로벌 이주 국가를 향해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단일민족 도그마에 머물러 있다. 이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형성된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체류 외국인의 생활 양식 등을 기록하고 지역별 이주 사회의 모습과 서사를 '이민자 지도'로 구축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이후에는 외국인 비자 제도 전반과 주요 체류 자격별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이민 정책의 큰 그림을 조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민정책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편집자주]

1000년 전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에서부터 오늘 조선소와 어업 현장에 선 노동자들까지. 한국 곳곳에는 다양한 시대와 산업, 지역을 배경으로 다양한 동남아 이주민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경북 봉화에서는 왕조의 뿌리를 기억하는 화산 이씨가, 수도권 시흥에서는 의료 코디네이터 이하진 씨가, 전남 영암의 조선소에서는 네팔 근로자 커뮤니티가, 완도에서는 김 양식에 종사하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사회와 얽히며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주와 정착이 더 이상 주변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지역사회와 산업을 지탱하는 현재진행형의 풍경임을 보여준다.

봉화군 창평리에 위치한 충효당(忠孝堂)은 화산 이씨 12대손 이장발(李長發, 1574-1592)을 기리기 위해 1750년경 건립됐다. /허아은 기자
봉화군 창평리에 위치한 충효당(忠孝堂)은 화산 이씨 12대손 이장발(李長發, 1574-1592)을 기리기 위해 1750년경 건립됐다. /허아은 기자

화산 이씨(花山 李氏)는 11세기~13세기 대월(大越, 현 베트남)을 최초로 통일한 리(李) 왕조의 혈통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집성촌을 이뤄 이어가고 있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리 왕조를 건국한 태조(太祖) 이공온(李公蘊)이며 중시조는 그의 6대손인 이용상(李龍祥)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상은 영종의 아들이자 고종의 동생, 혜종의 숙부로 기록된 인물로 진(陳) 왕조의 집권 과정에서 망명해 고려에 정착했다.

이들은 《화산이씨세보》에 리 왕조의 계보를 기록해 보존해 왔다. 이는 베트남 사서에 기록된 계보와 일치해 리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받았다. 지금도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 후손을 '명예 베트남인'으로 대우하며 베트남에 거주할 경우 출입국과 세금, 토지 구입 등에서 자국민과 동일한 혜택을 준다. 귀화를 원할 경우 다른 외국인보다 간소화된 절차만을 거치면 된다.

리 왕조의 시조 이공온은 오늘날 베트남에서 세종대왕에 비견될 만큼 존경받는 군주다. 외세 침략이 잦았던 베트남 역사에서 리 왕조 시기는 드물게 평화와 안정이 이어진 전성기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화산 이씨는 베트남에서 216년, 한국에서 800년에 이르는 역사를 이어왔다. 여성경제신문은 지난 7월 화산 이씨 37대손이자 봉화종친회 사무국장인 이시창 씨를 만나 충효당을 비롯한 화산 이씨 유산을 둘러봤다.

봉화군 창평리에 위치한 충효당(忠孝堂)은 화산 이씨 12대손 이장발(李長發, 1574-1592)을 기리기 위해 1750년경 건립됐다. 이장발은 19세의 나이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문경에서 전사했다.

충효당의 화반(花盤)에는 베트남의 국화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반이란 기둥 위에 얹는 넓적한 나무 받침판으로 한옥 기둥과 보를 연결할 때 사이를 둬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사무국장은 "충효당이 지어졌을 때는 이미 화산 이씨가 한반도에 정착한지 300년가량 지났을 때인데 그럼에도 연꽃 문양을 새겼다는 것은 정체성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화반 위에는 이 사당이 왜 지어졌는지 설명하는 '충효당기' 현판이 걸려 있다.

충효당기 옆에는 '순절시(殉節詩)'가 배치됐다. '백년존사계(百年存社計, 오랜 사직을 보존하고자) 유월착융의(六月着戎衣, 6월에 갑옷을 입었네), 우국신공사(憂國身空死, 나라 걱정하는 마음에 몸은 헛되이 죽지만) 사친혼독귀(思親魂獨歸, 혼백만은 외로이 어머니께 돌아가네)'라는 내용 안에는 의(義)·용(勇)·충(忠)·효(孝)의 가치가 담겨 있다.

이 사무국장이 어릴 때만 해도 이곳에서는 충효당의 제사를 지냈다. 그는 "제사 전날 밤에 모이면 할아버지들께서 '화산 이씨는 베트남 왕족의 후손임을 잊지 말라'고 했다"며 "왕가의 명성에 걸맞는 말과 행동을 하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이시창 씨는 화산 이씨 37대손이자 봉화종친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허아은 기자
이시창 씨는 화산 이씨 37대손이자 봉화종친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허아은 기자

하지만 당시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전이었으며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을 향한 한국인의 인식은 좋지 못했다. 이 사무국장은 "친구들에게 말하기 창피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충효당에서 차로 10분가량 이동하면 닿는 소금계곡 입구에는 화산 이씨 재실이 위치한다. 선조의 제사를 위해 건축된 것으로 충효당 건립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봉화군은 이처럼 오래 이어져 온 리 왕조와 인연을 바탕으로 K-베트남밸리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효당이 위치한 창평리 일원에 관광지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 베트남 기업과 공학자가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 빌리지가 지어질 예정이다. 봉화군은 다문화 가정 2세를 위한 교육발전특구. 한-베 역사문화 콘텐츠를 사업화하고 창업과 기업 지원을 담당할 콘텐츠 사업화센터 역시 육성할 계획이다.

봉화군은 K-베트남밸리가 조성되면 외국인의 일시적 방문이 아닌 정주까지 이어지는 청사진을 그린다. 이는 봉화군이 인구소멸위험지수 0.13의 '소멸 초고위험' 지역인 탓도 있다. 인구소멸위험지수는 만 20~39세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인구로 나눠 낸 수치로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지역으로 정의된다.

봉화군의 인구 감소 현상은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초 국제결혼이 활성화되면서 봉화군에는 다수의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여성이 정착했다. 6월 기준 봉화군에 거주하는 베트남 출신 이주민은 596명으로 전체 이주민(1238명) 중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베트남에서 결혼이주한 여성이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3년 기준 국적별 결혼이민자 현황을 보면 베트남 국적의 결혼이민자는 3만9956명으로 전체(17만4895명)의 22.8%로 집계돼 모든 국적 중 가장 많았다. 약 4만명의 베트남 결혼이민자 중 여성은 3만5481명으로 베트남 국적 결혼이민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00년대 한국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 상대국으로 베트남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베트남 정부는 필리핀, 태국 등 국가보다 국제결혼을 비교적 개방적으로 허용해 중개업체가 합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 시장은 한국 농촌 지역의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필리핀은 가톨릭의 영향으로 국제결혼 중개업이 법으로 금지됐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는 이슬람 율법적 제약으로 절차가 까다로웠다.

경제적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1990~2000년대 초 베트남은 도이머이(Đổi Mới) 개혁 초기 단계로 1인당 GDP가 약 400~700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태국은 2000~3000 달러, 말레이시아는 4000~5000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 유교 전통과 가족 중심 문화, 한자 문화권이라는 점 등 한국과 문화적 친근성, 중개업계의 집중적인 마케팅, 선배 이주민 네트워크까지 겹치면서 '베트남=한국 농촌 국제결혼 대표국'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일례로 베트남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인 히에우(Hiếu)를 중시하는데 이는 '효(孝)'를 중시하는 한국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민은 영남 지역에 많이 정착했다. 조하영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생은 이민정책연구원 논문을 보면 베트남 국적의 수도권 거주 비율은 34.1%로 이주민 수(30만5936명)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인데 이는 베트남 출신 이주민이 농촌에 거주하거나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했다.

결혼해서 봉화군에 온지 17년 된 금미선 씨는 봉화군내 베트남 자조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금씨가 운영하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은 포털 사이트에 '봉화군 맛집'을 검색하면 상위에 노출될 정도로 일대에서 유명하다. 금씨에게 '17년 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가족과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 봉화에 왔을 때는 베트남 사람도 별로 없고 한국말도 어려워서 많이 힘들었다"면서 "지금은 다 큰 자식과 남편이 있음은 물론이고 베트남 사람끼리 모임도 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결혼해서 봉화군에 온지 17년 된 금미선 씨는 봉화군내 베트남 자조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허아은 기자
결혼해서 봉화군에 온지 17년 된 금미선 씨는 봉화군내 베트남 자조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허아은 기자

자조 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권지은 씨는 19년 전 베트남에서 결혼 이주했다. 현재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권씨는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제사를 밤에 지낸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내지만 낮에 지내는 것이 전통이라는 설명이다.

베트남 자조 모임은 봉화군에 새로 이주하는 '후배' 이주민들을 위해 통역과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1년 미만으로 머물고 가는 '계절근로자' 중 베트남 출신이 있으면 이들도 적응하게 돕는다.

한국어가 익숙해지고 베트남 이주민 공동체가 생기면서 권씨는 한국에서의 삶이 베트남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날씨마저 비슷한 것 같다"면서 웃었다.

이들이 한국행을 택했던 십수년 전만 해도 봉화군에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K-베트남밸리 조성에 관해 이들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금씨는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감동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베트남 출신 친구가 '너희 지역에 왕족 후손이 산다는데 정말이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일 때 뿌듯했다"고 했다.

봉화군은 향후 베트남 출신 이주민이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립 커뮤니티 마을 모델도 조성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이주민의 이주 정착을 유도했다면 K-베트남밸리는 먼저 정착한 이들이 새로운 이주민의 정착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선순환 모델을 지향한다. 봉화군에 거주중인 베트남 이주민들을 교육시켜 관광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커뮤니티를 잘 이끌어갈 '리더'를 뽑기 위해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봉화군의 사례가 '역사적 뿌리'와 '결혼이민'을 중심으로 베트남과 이어진 것이라면 수도권인 경기도 시흥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베트남 이주민들이 삶을 일구고 있다. 이 두 지역의 사례는 한국 사회 속 베트남 공동체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는 1977년 안산·시흥 일대 매립지에 들어선 반월공단과 1990년대 시화호 간척지에 조성된 시화공단을 통합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제조업 단지다. 자동차·전자·금속·섬유 등 중소 제조업체 2만여 곳이 입주해 있으며 한국 제조업 성장의 산실로 불려왔다. 현재는 내국인 인력만으로는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워 동남아와 중국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고용돼 있다.

지난 2023년 11월 기준 시흥시 관내 외국인은 6만 2101명이었으며 이중 베트남 국적 이주민은 4950명이었다. 시흥시 관내 외국인의 68.44%가 산단이 위치한 정왕동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

시흥시 정왕동에 자리한 시화병원에는 국제진료센터가 있다. 낯선 언어와 제도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에게 시화병원은 단순한 치료 공간을 넘어선 생활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 출신 이하진 씨는 시화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의료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하루 평균 10여 명의 환자를 통역하며 병원 시스템을 안내하고 의료비 부담과 건강보험 적용 여부 같은 민감한 질문에도 귀를 기울이며 병원과 면밀히 소통한다.

베트남 출신 이하진 씨(가운데)는 시화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의료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 이주민 환자의 수납을 돕고 있다. /허아은 기자
베트남 출신 이하진 씨(가운데)는 시화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의료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 이주민 환자의 수납을 돕고 있다. /허아은 기자

이씨의 역할은 병원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흥시 내 베트남 출신 이주민 100여 명이 모인 카카오톡 방에서 그는 사실상 의료 상담 창구다. '언제 병원을 가야 하냐', '비용이 얼마나 드냐'는 질문이 올라오면 이씨는 가장 먼저 답을 남긴다. 주말에는 공동체 내에서 아이들을 위한 베트남어 수업이나 명절 행사에도 참여해 다른 이주민들에게 "고향에 가지 못해도 외롭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시흥시의 베트남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영암의 네팔 공동체 역시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전남 영암군에 자리한 HD현대삼호조선은 대형 상선 건조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대표 조선사다.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 인력난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급증했다. 협력사 소속 외국인은 약 3400명, 전체 생산인력의 30%가량을 차지한다. 

HD현대삼호의 협력업체에서는 약 800명의 네팔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중에서는 네팔 출신이 가장 많다. 네팔 커뮤니티장 푸르기마 씨는 지난 2017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HD현대삼호 협력업체 유원산업에서는 햇수로 5년째 근무하며 네팔 출신 근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한국에 처음 와서는 '연음'을 발음하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이제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고용허가제(EPS·Employment Permit System)는 2004년 도입된 제도로 인력난을 겪는 제조업·농어업·건설업 등에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근로자는 최초 4년 9개월까지 일할 수 있으며 이 기간이 끝나면 우수 작업자에 한해 고국에 방문했다가 돌아올 경우 1회 연장이 가능하다.

푸르기마 씨는 우수작업자로 선정돼 비자 연장에 성공했다. HD현대삼호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돈을 모은 탓에 고국에 머무는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다. 그는 "작업 현장은 힘들지만 고국 출신끼리 뭉쳐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커뮤니티는 안전사고 대응, 병원·통역 안내, 송금·보험 절차 같은 생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신입 노동자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HD현대삼호 네팔 근로자 커뮤니티장 푸르기마 씨는 지난 2017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HD현대삼호
HD현대삼호 네팔 근로자 커뮤니티장 푸르기마 씨는 지난 2017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HD현대삼호

푸르기마 씨는 사내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같은 시간에 모이기가 편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기숙사에만 있으면 외로울 텐데 주중 저녁이든 주말이든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면 즐겁다"면서 "같은 네팔 출신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서로를 소개해주면서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고 했다. 다수의 네팔 출신이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네팔 명절인 '다사인(Dashain)'과 '띠하르(Ttihar)'도 빠짐없이 챙긴다. 전통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민속놀이도 한다.

HD현대삼호에서 근무하는 네팔 이주민들은 생활 만족도가 높다. 푸르기마 씨에 따르면 여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네팔 근로자 중 "너희 회사로 옮기고 싶은데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푸르기마 씨는 특히 HD현대삼호에서 일하는 안정성과 환경을 강조했다. 그는 "함께 한국에 왔지만 다른 작업장에 간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한다"며 안전 수칙의 철저한 준수와 안정된 급여 체계를 장점으로 꼽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비교적 수평적인 작업 환경도 낯설었다. 그는 "네팔의 경우 사장님이나 반장님처럼 직위가 높은 분은 함께 식사할 일이 거의 없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고) 사장님이 근로자들을 격려하며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고 했다. 이어 "네팔 역시 이런 문화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종교 생활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HD현대삼호 네팔 근로자의 생활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영암 축성사가 위치한다. 네팔 근로자들은 경내에 '마니차'를 조성하는 데 직접 힘을 보탰다. 마니차란 원통 속에 진언과 경전을 넣고 돌리는 티베트·네팔 불교의 수행 도구로 업장 소멸과 소원 성취, 극락왕생 등의 의미를 지닌다.

네팔 근로자들은 퇴근 후와 주말에 시간을 내 직접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랐다. '네팔이 불교의 나라인 만큼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니 한국 불교에도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네팔 근로자가 많다고 푸르기마 씨는 설명했다.

네팔 근로자들은 퇴근 후와 주말에 시간을 내 영암 축성사의 마니차 조성을 도왔다. 사진은 완성 기념 행사에서의 전통 법복을 입은 푸르기마 씨 /푸르기마
네팔 근로자들은 퇴근 후와 주말에 시간을 내 영암 축성사의 마니차 조성을 도왔다. 사진은 완성 기념 행사에서의 전통 법복을 입은 푸르기마 씨 /푸르기마

전라남도 완도군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 이주민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는 어업 노동이주를 매개로 한 필리핀과의 연결이다.

김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수산물로 매년 수출액이 7억 달러를 웃도는 효자 품목이다. 특히 전남 고흥·완도·진도를 포함한 서남해안은 전국 김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조류가 빠르고 수온이 적당해 양식 여건이 뛰어난 탓이다.

완도군의 등록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어업 고용허가제(E-9-4) 비자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 가운데 필리핀 국적자가 17.8%를 차지하며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 군 단위에서 드물게 높은 비중을 보인다. 완도군은 2021년 딸락주, 2023년 샤블라얀시와 각각 MOU를 체결하며 교류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갈등과 사건도 적지 않았다. 2023년 여름, 일부 고용주가 필리핀 계절근로자를 폭행하고 임금을 체불하자 법무부가 구제조치를 했고 이에 반발한 필리핀 정부가 자국 노동자 150명의 출국을 일방적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입국한 근로자가 불법 브로커에게 돈을 갈취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완도군의 협의를 거쳐 필리핀 정부의 승인을 얻어내면서 근로자들이 다시 입국할 수 있었다.

김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수산물로 매년 수출액이 7억 달러를 웃도는 효자 품목이다. 특히 전남 고흥·완도·진도를 포함한 서남해안은 전국 김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완도해양경찰서=연합뉴스
김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수산물로 매년 수출액이 7억 달러를 웃도는 효자 품목이다. 특히 전남 고흥·완도·진도를 포함한 서남해안은 전국 김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완도해양경찰서=연합뉴스

봉화·시흥·영암·완도의 사례는 한국 사회가 이미 아시아 이주민과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의료·제조·어업 등 각기 다른 영역에서 이주민은 지역 경제와 산업의 필수 노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단순한 '외부 인력'이 아니라 정주 인구로서 지역 공동체에 편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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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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