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노인복지' 빠진 실버타운 열풍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목멱칼럼]'노인복지' 빠진 실버타운 열풍

이데일리 2025-09-03 05:00:00 신고

3줄요약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 최근 건설업계가 주목하는 불황 돌파구는 ‘실버타운’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24년 경제전망에서 올해 건설투자가 전년 대비 -8.1%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령사회를 겨냥한 시니어 하우징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실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과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공급된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은 민간 기업이 운영을 맡은 사례로, 90% 이상의 계약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수도권의 일부 고급 실버타운은 보증금이 10억원을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대기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역시 민간 진입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 중이다.

정부가 2023년 11월 발표한 ‘시니어 레지던스 공급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유휴 국유지와 도시재생지를 활용한 부지 공급, 주택도시기금 융자 지원, 복합개발 허용, 토지·건물 소유 관련 규제 정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를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흐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령사회에 대비한 투자와 정책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화려한 커뮤니티, 고급 외관…. 그러나 그 안에 ‘삶’은 있었는가.

실제 사례를 보면 실버타운이라는 이름 아래 운영 부실, 약속 불이행, 서비스 공백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입주자들은 폐쇄된 커뮤니티 시설, 단체 급식 수준의 식사, 미비한 응급대응과 부재한 생활지원에 불만을 터뜨린다. 최근 KBS ‘추적 60분’은 ‘노후를 분양합니다-실버타운이라는 허상’ 편을 통해 이러한 민낯을 고발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분양형이든 임대형이든 운영이 빠진 모델은 시한폭탄이다.

입주자는 노후를 맡긴 대가로 건물만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돌봄, 공동체, 신뢰 시스템이 함께 들어 있어야 비로소 실버타운이라 부를 수 있다.

이 문제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말 실시한 ‘노인복지주택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39개소 중 10개소(25.6%)는 공동식당을 운영하지 않았고 9개소(23.1%)는 생활지원 서비스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이 중 분양형 시설이 6개소(66.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건강관리, 강좌, 여행·관람, 주거지원 등 여러 영역에서도 분양형은 서비스 미제공 비율이 높아 사실상 고령자가 스스로 식사와 생필품을 해결해야 하는 구조였다. 법적 명칭은 ‘복지주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복지’가 빠져 있는 주거 공간인 셈이다.

더욱이 현재 노인복지주택에는 아파트처럼 법적 입주자대표회의 설치 의무가 없다. 대신 ‘운영위원회’나 ‘운영간담회’를 꾸리고 있지만 같은 조사에서조차 참여 주체가 제한적이어서 실질적 감시 기능이 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문제는 운영이 불투명해지면 결국 입주자는 구조적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영국과 북유럽에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고령자 주거시설이라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서비스 기준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지자체나 감독 기관이 이를 관리·감독한다.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삶의 질 보장을 위한 최소 기준을 공적으로 책임지는 구조인 셈이다. 일본의 유료노인홈은 공공재정인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유사)을 일부 서비스에 연계해 입주자가 돌봄을 포함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이는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장치다.

특히 이들 국가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실버타운에도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들이 입주해 있으며 자연스럽게 돌봄도 이뤄진다. 한국은 아직 주거와 돌봄을 분리해 운영하는 구조지만 머지않아 같은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서비스 최소기준과 운영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실버타운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고령자에게 어떤 노후를 약속하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 드러나는 거울이다. 신뢰 없는 운영, 철학 없는 시설은 결국 ‘노인의 불안을 분양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건설 불황의 출구 전략이 아닌 고령자의 일상을 함께 지켜주는 기반.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실버타운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건물이 아닌 삶을 짓는 일’이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