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홍영인, 음악을 조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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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홍영인, 음악을 조각하다

더 네이버 2025-09-02 21:47: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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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조각으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까. 그간 퍼포먼스, 설치 작업 등을 통해 사운드를 탐구해온 아티스트 홍영인이 시각언어를 매개로 작곡을 시도했다. 그 결과물을 모아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9월 27일까지 개인전 <서투른 작곡가>를 개최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한 개인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가 지난 7월 막을 내린 이후 잠깐 틈을 두고 여는 전시다. 전시 제목 ‘서투른 작곡가’는 작가를 가리키는 단어다. 긴 시간 일상에서 소리를 수집해온 시각예술가는 본격적으로 사운드를 중심에 두고 ‘아마추어’ 되기를 수락했다.
PKM 갤러리 본관에 들어서면 곧장 마주하는 메인 전시실에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조각이, 안쪽 전시실에는 퍼포먼스를 위한 대형 조각 작품이 설치되었고, 별관에는 소품과 드로잉, 자수가 전시되어 있다. 별관의 작품이 악보에 해당한다면, 본관에는 이를 3차원으로 구현한 악기와 본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전시 개막 전 PKM 갤러리에서 미리 홍영인 작가를 만났다. 그의 손길이 닿은 조각 작품은 저마다 맑고 영롱한 소리를 퍼뜨렸다.

전시 제목에 대해 묻고 싶다. <서투른 작곡가>, 영제로는 <아마추어 컴포저>인데, 국문과 영문 중 어디서 출발했는지 궁금하다. 이번 전시작은 물질로 작곡을 시도한 결과물이다. 소리에 대한 관심을 밖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결과를 계획하고 착수했다면, 신작은 과정 중심이다. 그렇기에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아마추어가 된 듯했다. 그 마음을 고백하듯 드러낸 제목으로 ‘아마추어 컴포저’를 먼저 떠올렸다. 동시에 스스로 서투르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물질로 작곡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현대음악에 그래픽 악보가 존재하지만 조각 악보는 본 적이 없어서 ‘과연 이게 가능할까?’ 자문하며 실험해나갔다. 예컨대 본관 안쪽 전시실의 악기 조각은 최종 결과물이라기보다 연주자가 변형할 수 있는 작곡 과정에 있는 조각인 것이다.


그간 소리 및 음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음악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고 10대 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다. 부모님도 음악을 좋아하셔서 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30대 초반, 작가 생활 초기만 해도 작업에 결정적으로 영감을 준 것이 음악이나 공연 예술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전위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작업 과정에 시각언어와 음악적 언어가 따로 존재하다 아트선재센터 <다섯 극과 모놀로그> 전시에서 처음 혼합했다. 소리를 동반한 퍼포먼스, 소리를 내는 작품, 퍼포먼스를 위한 매뉴얼로서의 텍스타일 작업이 하나가 된 중요한 전시였다. 그 전시의 연장선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조각들도 소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번에는 최종 결과물인 대형 악기 조각 외에는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품 조각은 활성화를 기다리는 잠재태 성격을 띤다. 예술의 여러 장르 가운데 음악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상업주의와 타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악을 듣다 감동받는 지점에서 작품이 형성된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발 나아간 전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처음 작업을 구상할 때부터 굉장히 신이 났다. 그 결과 주된 관심사인 한국 근대사 속 여성 노동, 그리고 인간 역사에서 배제된 동물 주체 등의 소재가 얽혀서 직관적으로 드러났다. 작품을 예로 들면 짚풀 공예 장인과 협업하며 짚풀 공예를 배운 적이 있다. 영국에서 짚을 구하기 어려워 영국과 한국에서 모은 실로 똬리를 만들고, 그것이 리듬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음악적 요소를 더했다. 그 결과물은 이전 작업보다 추상적인 것 같다. 추상 언어를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과정에 놓인 작업이랄까.


평면 작업과 조각 형태는 어디서 출발했나? 별관에 전시된 캔버스 악보는 녹음한 소리를 사운드 프로그램으로 편집한 뒤 그 그래프를 물질로 전환한 작업이다. 또 3D 악보 작업에 착수했을 때 리듬을 찾아내는 게 중요했다. 현대음악 작곡가 모튼 펠드먼은 그리드로 악보를 그리거나 몇 시간에 달하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펠드먼이 소리의 실체를 찾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듯 색면의 실체를 생각하며 천을 슥슥 잘라 이어 붙인 패치워크 작품이 별관에 걸렸다. 본관 입구 전시실 작품은 대형 조각의 이전 단계다. 소리로 물질을 작곡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소리 나는 사물을 만들게 되더라. 그중 나무 소재의 ‘Chime Prayers’는 성당의 기도 의자 형태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연주하는 이 작품은 아름다운 소리가 나길 원했다. 안쪽 전시실 조각에 이르러서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 예컨대 수집한 소리를 듣다 코끼리 소리가 나오면 코끼리를 표현했다. 그래서 내게는 아마추어적인 과정이었다. 


어떤 소리들을 채집했는지도 궁금하다. 평소 오가는 길에 아이폰으로 녹음한다. 현재 살고 있는 영국 브리스톨은 항구 도시라 갈매기가 많다. 새 소리가 줄곧 들려 그것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숲을 산책하거나 근처 교회에 종이 울릴 때 녹음한다. 여행 중에도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다. 전시를 위해 방문한 일본 미토시에서 대나무 소리를 처음 듣고 캔버스 작업에 담기도 했다. 녹음하는 습관이 생긴 이후 소리를 더 집중해 듣게 되었다. 차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매미 소리… 소리로 접하는 세상은 다르게 다가온다. 인간이 익숙한 방식으로 사는 동안 잃는 경험이 있는데, 그게 소리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소리에 집중하면 우리 삶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소리로 향하는 작업에는 정치적 측면이 있다.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자수를 배웠다고. 어떤 경험이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다(웃음). 영국 대학원 졸업 전시 때 바느질로 거대한 무대 커튼을 제작했다. 학교를 떠난 뒤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지 고민이 컸는데 재봉틀이 하나 있으니 지속할 수 있겠더라. 그러다 인도에 전시를 하러 갔을 때였다. 평생 프로젝트인 자수 작업의 초기 단계였는데, 재봉틀을 가져가지 않아 올드 델리의 자수 장인을 소개받았다. 그때 공업용 재봉틀을 처음 봤다. 수동 기계의 작동법을 배웠는데 속도가 정말 빠른 거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4년 정도 살던 시기에 자수를 의뢰하기 위해 동대문 동화시장을 찾았다. 나이 든 사장님을 알게 됐는데, 마침 그분에게 수동 재봉틀이 하나 더 있었다. 기름 치는 법부터 제대로 배웠다. 그게 2000년대 초반이니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림 그리는 것보다 자수가 더 자연스럽다. 가까워지고 나서 그분의 삶에 대해 들었고 동화시장의 방직 노동자들, 전태일 등으로 관심이 뻗어갔다. 그런데 한국에는 엘리트들이 쓴 간접적 역사 외에 관련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동화시장 여공이었던 신순애 선생이 쓴 <열세 살 여공의 삶>이 출간되었고 처음으로 노동자가 서술한 내부의 삶을 읽었다. 민주주의에 기여한 이들이지만 쓰이지 않은 역사가 너무 많다. 그래서 역사는 글로 쓰이는 게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같은 내러티브를 퍼포먼스로 옮기는 까닭은 퍼포먼스에는 매뉴얼과 지시문이 존재하므로 시간이 지나도 당대 젊은이들에 의해 계속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바느질에서 시작된 것이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드럼을 배워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영화 장르에서는 리듬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미술 작업과 리듬의 관계가 궁금하다. 나 역시 드럼에 꽂혀 있다(웃음). 나의 모든 퍼포먼스에는 드러머가 존재한다. 신작에 두루미와 코끼리가 등장하는데, 과거 인간에게는 없는 힘이 있다고 믿은, 인간이 숭배했던 신성한 동물에 관심이 크다. 마찬가지로 신성성을 표현하는 악기로서 드럼을 좋아한다. 퍼포머에게 늘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면 ‘귀는 드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데 평소 어떤 음악을 즐겨 듣나? 여러 장르를 뒤섞어 듣는다. 메인스트림이 아닌 음악을 소개하는 음악 전문 라디오 NTS를 좋아한다. 요즘은 이란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예전에 협업한 적 있는 The Third Orchestra의 음악도 좋아하고 현대 클래식 음악이나 대안 음악도 듣지만, 전자음악은 그리 찾아 듣지 않는다. 최근에는 마리아 칼라스나 존 케이지에 꽂혀서 그들 음악만 듣기도 했다.


이른 얘기일 수 있지만 다음 작업이 궁금해진다.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퍼포먼스, 설치, 사운드에 이어 작곡도 했다. 매체에 대해 겁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자주 생각한다.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더욱 겁 없이 해나가려 한다. 초기에는 작품 속 매체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기도 했는데,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한다. 동시에 여전히 협업은 주된 관심사다. 플래시몹에 관심이 커서 많은 퍼포머를 공개 오디션을 통해 만난다. 그들과 작품에 대해 공유하고 협업하는 과정이 특별하다. 아티스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과정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격려가 된다. 스튜디오에 파묻혀 집중하는 시간만큼 소중하다.   

Installation view of Amateur Composer at PKM&PK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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