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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덮친 역대급 가뭄 …오봉저수지 저수율 14.1%까지 감소
2일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강릉시의 생활·공업용수를 책임지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전날보다 0.4%포인트 떨어진 14.1%를 기록했다. 이는 평년 저수율(71.8%)의 5분의 1 수준(206만t)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지 않고 일일 생활용수 사용량(8.6만t)만 고려했을 때 앞으로 24일간 사용할 물만 남은 셈이다. 이에 따라 강릉시는 지난달 20일부터 계량기의 밸브를 50% 잠그는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31일부터 공업용수의 공급을 중단했다.
올여름(6~8월) 강릉에는 1912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 이 지역에는 108년 만에 가장 적은 비(187.9㎜)가 내렸다. 이처럼 역대급 가뭄이 발생한 배경에는 가뭄이 발생하기 쉬운 지형조건과 승온효과(푄현상)가 있다. 승온효과는 바람이 산맥을 넘어 하강하면서 고온건조해지는 현상이다. 여름철 우리나라에는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자주 부는데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어갈 때 승온효과에 의해 강원 영서지역에 많은 비를 뿌리고 영동지방에는 적은 비와 함께 고온건조한 날씨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기후변화는 여름철 건조한 강릉 지역의 가뭄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과거 장마철에는 정체전선에 의한 강수대가 장기간 국내에 영향을 줬는데, 최근엔 좁은 지역에 많은 비가 집중되는 대류성 강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번에 많은 비가 집중될 때는 빗물이 빠르게 바다로 흘러간다. 또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에는 무더위에 수증기가 빠르게 증발돼 땅이 메마르기 쉽다.
올해 여름철처럼 짧은 장마와 긴 폭염이 발생하는 환경에서는 건조한 땅이 햇볕에 빨리 가열되고 상층의 공기를 데워서 밤에도 열기가 식지 못한다. 결국 식물은 열기를 식히기 위해 뿌리층의 물을 평소보다 더 흡수해서 단기간에 ‘돌발가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가뭄특화연구센터장)은 “가뭄은 원래 봄에 심해지는데 최근에는 초여름 폭염이 발생하면서 장마 기간이 짧아지고 급격히 지표면이 말라서 여름에도 2~3주 만에 돌발가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6~8월 3개월간 강릉의 누적 폭염 일수는 41일로, 평년값(1991년~2020년, 12일)보다 3배 이상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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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문제 막을 시설은 공백…“가뭄 뒤 복합재난 위험 커진다”
문제는 올가을 복합재해를 막을 시설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장기 가뭄을 겪은 강릉시는 반복되는 가뭄을 예방하고자 2023년 환경부에 지하수저류댐의 설치와 정수장 현대화를 위한 예산을 신청했다. 시는 올해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설계와 공사, 준공에 이르기까지 4~5년의 시간이 소요돼 당장 가뭄에 대처할 길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기후전문가들은 가뭄 이후 가을 산불과 산사태, 적조현상 등 관련 재해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미 복합재해 상황에 있다. 돌발가뭄은 가뭄과 산불, 적조와 한 번에 온다”며 “2021년~2023년에도 남부지방에 관측 사상 가장 긴 가뭄이 발생했듯이 가뭄은 이제 영동지역 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짚었다.
박수진 한국기후변화연구원 박사는 “비가 안 오고 고온 일수가 길어지면 지표면의 증발량이 증가해 9~10월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태풍도 보통 가을에 가장 강력한데 토양 속에 적정한 양의 수분이 없으면 마찰이 줄어서 산사태의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뭄은 농업뿐 아니라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미칠 수 있는 파장이 큰 만큼 관련 기관들의 유기적인 대응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상청은 오는 4일 강원 내륙과 산지에 5~20㎜ 상당의 비가 내린다고 밝혔다. 다만 강릉을 포함한 강원 영동지역은 예상 강수량이 적어서 해갈이 어려울 전망이다. 주말에도 비는 강원 영동 지역을 제외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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