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참여 동기는 ‘주말에 할 게 없어서’였다. 콘텐츠 요소는 뒷전, 음식을 준다는 문구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 행사에 취재 차 몇 번 참여한 경험으로 미뤄볼 때, 내어주는 음식 맛은 일단 보장된다.
두 번째는 자격요건이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2030 1인 가구 청년’이 대상인데, 1986년생이 마지노선이란다. ‘나 내년이면 청년이 아닌가?’, ‘그럼 내년이면 1인 가구가 아니라 독거노인인가?’ 이런 잡생각들이 흐르다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번이 아니면 참가 못 한다고 생각하니 망설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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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8월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오후, 또다른 예비 독거노인 안모씨와 함께 경기도 먹거리광장에 도착했다. MBTI가 대문자 I(매우 내향적이라는 뜻이다)라 혼자 오기 겁나서 꼬드겼고, 안씨 역시 주말에 할 게 없던 처지라 금방 넘어왔다.
시설 안에 들어서니 일찌감치 온 참여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처럼 지인끼리 온 경우도 있고, 혼자 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간혹 커플로 의심 또는 확신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곧 1인 가구가 아니게 될 사람들인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행사를 취재해서 기사를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강연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듣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피자, 햄버거, 매실청 그리고 크림브륄레
이날 테이스티 광장 주제는 ‘영화 속 음식이야기’로 요리연구가이자, 방송작가로도 활동한 정영선 파란달 스튜디오 대표가 강사로 나섰다.
소개된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리틀 포레스트(2018) △더 메뉴(2022)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4개 작품이다. 미식(美食)을 주제로 한다는 공통점은 드러나 있지만, 이번 강연의 주제인 영화 속 음식과 프로그램 참여 대상인 청년 1인 가구와 상관관계는 선뜻 짚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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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주최 측이 준비한 음식이 상에 오르자, 그제야 강사인 정 대표와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이 홀로 사는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메인메뉴는 마르게리따 조각 피자와 미니 치즈버거, 디저트는 크림 브륄레, 음료는 매실청 에이드가 나왔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 분)가 이탈리아 나폴리까지 찾아가 먹은 마르게리따 피자는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뜻한다고 강사는 설명했다.
완벽한 삶을 위해 먹는 것도 자제하며 살았던 리즈가 ‘살이 쪄도 괜찮다’며 피자 한 판을 해치우는 모습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얻는 행복을 나타낸다. 어쩌면 ‘남들처럼’ ‘남들만큼’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진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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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메뉴’에 나온 미니 치즈버거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영화에서 음식은 일종의 ‘권위’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표현되지만, 치즈버거만큼은 음식 본질에 집중한 메뉴로 결말을 향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스포일러가 너무 많다. 결론은 음식 본연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1인 가구여도 잘 먹으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해석은 청자의 몫이다.
디저트로 나온 크림 브륄레는 ‘리틀 포레스트’를 관통하는 서사인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크림 브륄레는 커스터드 크림 위에 올린 설탕을 토치로 녹여 단단한 막을 입히는 프랑스 디저트다. 스푼으로 설탕막을 ‘탁’ 소리 나게 깨어서 먹는 재미가 있다. 극 중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에게 엄마(문소리 분)가 해줬던 추억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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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혜원이 크림 브륄레를 먹는 장면이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해석했다. 자칫 주변과 단절되기 쉬운 1인 가구 청년들도 껍데기를 깨고 나오라는 의미다. 이 역시 해석은 청자 마음이다.
마지막 매실청 에이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주인공 네 자매 중 유일하게 엄마가 다른 막내 스즈(히로세 스즈 분)가 진정한 가족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음식이다. 영화에서는 자매가 함께 담근 매실주였지만, 강연이 낮 시간인 관계로 매실청 에이드가 상에 올랐다.
이처럼 피자, 햄버거, 크림 브륄레, 매실청 에이드 등 각각의 음식은 영화 속에서 의미가 더해지면서 청년 1인 가구를 위로하고, 또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긴 훌륭한 한 상이 됐다. 물론 모두 경기도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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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준비한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관계자는 “혼자 하는 식사가 많은 1인 가구 청년들이 이번 강연 이후 음식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시간을 찾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시 청자의 해석이 맞는 것 같다. 이 관계자는 또 “경기도 농수산물을 이용한 요리로 음식을 챙기고 건강도 챙겨보시길 바란다”고 은근슬쩍 영업도 했다.
한편, 경기도 먹거리광장은 과거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관리동과 원예학과의 온실로 사용되던 건물과 부지를 리모델링해 강연 및 쿠킹클래스, 텃밭 등으로 재구성한 공간이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이 올해 초 개장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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