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방향신호 켜지 않는 ‘지역혁신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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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방향신호 켜지 않는 ‘지역혁신 정책’

경기일보 2025-09-01 19:07: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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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계원예술대 총장

미국 뉴욕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번은 자동차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줄도 모르고 교차로를 직진하다 경찰에게 적발된 적이 있다. 경찰은 제 차를 보며 고개를 저었고 딱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Unsafe lane changed(불안전한 차선 변경)”. 그날 이후 운전할 때마다 교차로에서 방향지시등을 더 자주, 더 길게 켜게 됐다. 운전을 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달리는 차량이 얼마나 불안한지. 차선은 있지만 예고 없이 바꾸는 차량, 교차로에서 멈춰 있으면서도 아무 신호도 없는 차량, 뒤따르는 운전자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예고 없는 차량들의 움직임은 곧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 지역혁신 정책을 생각나게 했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지역혁신 정책 변화들이 마치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자동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역의 산업 정책, 도시 개발, 교통 계획, 예술문화 공간 변화 등 중요한 지역정책 방향이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된다. 하지만 정작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방향 신호도 없다. 사전 설명도, 공감대 형성도, 참여 기회도 없이, 그저 “우리가 이렇게 하겠다”는 일방적 선언만 있을 뿐이다. 지역의 정책 담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민을 위해 하는 일이다. 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결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기대가 아니라 혼란과 소외감, 때로는 분노다.

 

왜 그럴까. 시민은 정책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 삶의 시간을 오랜 기간 쌓아온 지역 공동체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은퇴 후 노후를 준비한다. 또 누군가는 평생의 일터를 그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렇듯 삶이 겹겹이 쌓인 공간에서 예고 없는 정책 변화는 누군가의 삶을 갑자기 꺾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청사진이나 복잡하고 두꺼운 보고서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변화, 존중받는 절차, 함께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배려’와 ‘소통’이 담긴 정책이다.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는 늘 멋지게 들린다. 하지만 그 혁신이 시민의 삶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의 서막일 것이다.

 

우리는 깜빡이를 켜지 않는 운전자를 무례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역정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방향 신호 하나가 사람들의 안전과 신뢰를 지켜주는 것처럼 지역정책에도 시민을 향한 방향신호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 가려 한다”는 깜빡이 신호,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신호 말이다. 지역정책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더 빠른 개발이나 더 큰 예산이 아니라 시민과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속도로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신호 하나를 켜는 데 드는 시간은 불과 몇 초일 뿐이다. 그러나 그 신호 하나가 안전을 보장하고 신뢰를 쌓게 된다. 지역정책도 마찬가지다. 시민을 먼저 배려하는 그 작은 신호에서부터 지역혁신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깜빡이를 켜는 행정, 깜빡이를 켜는 지역정책이 기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시민과 행정이 나란히 동일한 방향으로 걸어갈 때 혁신은 비로소 멋진 ‘지역혁신’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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