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20대 남성 A씨는 최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서 "본인 명의 대포통장이 적발돼 자산 검증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기범은 A씨가 1억9000만원 상당의 테더 코인을 매수하도록 한 뒤 특정 지갑 주소로 송금하게 유도했다. 결국 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0대 여성 B씨도 지난해 말 카드 배송원 사칭범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후 카드사 고객센터와 금융감독원, 검찰을 사칭한 이들이 연이어 전화를 걸어와 "대포통장이 적발됐다"며 자산 검증을 요구했다. B씨는 1억9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구매해 지정된 지갑으로 보냈지만, 역시 되돌릴 수 없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현금 대신 가상자산을 노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는 20대 청년부터 고령층, 재력가와 유명인까지 전 세대로 확산되며 피해가 커지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가상자산 편취 사건은 42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64건과 비교하면 6.6배에 달하는 수치다. 2024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가상자산 관련 사기 사건은 130건이었으나, 올해는 7개월 만에 이미 이를 넘어섰다.
범행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다. 단순히 계좌이체나 대면 편취를 통해 현금을 가로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규모 조직을 통해 수거책·송금책·환전책을 동원해 현금을 가상자산으로 바꾸는 자금세탁형 범행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 해킹조직은 재력가와 유명인까지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대기업 회장, 연예인, 법조인 등 258명을 정밀 선별한 뒤, 정부·공공기관·IT 플랫폼을 해킹해 신분증, 연락처, 계좌번호 등 개인·금융 정보를 빼냈다.
이후 알뜰폰 개통, 인증서 무단 발급, 은행·증권·가상자산 계좌 출금, 자금세탁 순으로 범행을 이어갔다. 특히 교정시설에 수감 중이거나 해외 출장, 군 복무 등으로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주요 표적이 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해킹조직 총책 중국 국적 30대 A씨 등 국내외 조직원 18명을 특정경제범죄법(사기)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이들은 2023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무단 개통한 알뜰폰 등을 활용해 피해자 16명으로부터 390억원을 빼았고, 추가로 10명에게서 250억원을 가로채려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개인정보를 해킹당한 피해자는 258명이다.
정부는 범죄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 중이다. AI 기반 탐지 플랫폼을 구축하고 24시간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을 가동하고 있다. 또한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금융회사에만 적용되던 지급정지·환급 책임을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동일하게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보이스피싱 이상거래 탐지, 거래 목적 확인, 지급정지, 피해금 환급까지 금융회사 수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범죄의 표적이 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며 "거래소는 자금세탁방지(AML)와 이상거래 탐지를 강화해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기술적 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Copyright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