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3일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열병식 행사 참석을 위해 1일 열차를 타고 베이징을 향해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탈냉전 후 처음으로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상 첫 북중러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31일부터 진행 중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앙숙'인 인도를 포함하여 20여개국이 넘는 글로벌사우스 국가 정상을 초청해 反트럼프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SCO 정상회의와 북중러 정상의 만남이 신냉전 시대의 출발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이번 방중이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에 한계를 느껴 중국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정은 열차편 방중 가능성…"단둥시 경비 강화"
외교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1일) 특별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열차로 하루 정도 걸리는 만큼 이날 출발해야 전승절 행사 전날인 2일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중국을 4번 방문했는데 두 번은 열차로 이동했고, 두 번은 전용기 '참매 1호'를 탔다.
이번에 전용기를 탈 가능성도 있지만 '참매 1호'가 노후해 안전상 열차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철도 동선 인근에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호텔이 외국인 예약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도 김 위원장이 열차를 이용하리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 호텔은 과거 김 위원장의 방중 때도 외국인 예약을 받지 않았다.
또한 단둥에서 오후에 출발해 이튿날 오전 베이징에 도착하는 열차 운행이 내달 1일과 2일 중단된 점도 김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됐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1일 밤 국경을 넘어 베이징으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언론도 열차편 이동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일 "단둥시의 경비가 강화됐다"며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를 타고 통과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경계 태세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단둥의 일부 호텔에서는 외국인 숙박객의 이용도 통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이날 "호텔의 숙박 제한이 확산하고 있다"며 "현지 당국이 경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 북중 접경 압록강에서 약 1㎞ 떨어진 호텔뿐만 아니라 10㎞가량 떨어진 시설에서도 숙박이 제한되고 있다고 전했다.
中열병식서 시진핑 우측에 푸틴·좌측엔 김정은 착석
사상 첫 북중러 정상회담 성사되나 "신냉전 공식 시작"
김 위원장은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광장 망루에 오를 전망이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나란히 앉아 세를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을 설명하며 "중국 동료들이 알려준 대로 우리 대통령(푸틴)은 열병식이 진행되는 동안 시 주석의 오른쪽에 앉아 있을 것이고, 북한 지도자(김정은 국무위원장)는 그의 왼쪽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중러 지도자가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나란히 착석한 모습은 큰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북중러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사상 첫 북중러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주 교수는 "북중러 정상회담으로 가시적인 정책 변화가 없더라도 이후 미국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면서 "북중러가 향후 미국과의 현안에 대해 한 팀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조지 H.W. 부시 미중 관계재단의 이성현 선임연구원도 같은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번 열병식은 신냉전의 공식적 시작이 될 것"이라며 "북중러 간 합동 군사훈련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점점 북러 군사협력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는 지역 질서에 불안정성을 만들고 북한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비난의 화살을 중국이 아닌 러시아로 향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푸틴·모디 등 20여개국 정상 모으며 反트럼프 연대 강화
나아가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31일 개막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反트럼프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CO는 2001년 중·러가 주축이 돼 옛소련 붕괴 이후 민족분열주의, 종교극단주의, 국제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중앙아시아 6개국의 다자안보기구로 출범했다. 2018년 인도와 파키스탄, 2023년 이란, 2024년 벨라루스가 합류해 10개국 체제로 확대하며 범유라시아포럼으로 발전했다.
이번 SCO 정상회의에는 푸틴 대통령, 모디 총리 등 20여개국 정상과 10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참석했으며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연대 범위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시 주석은 31일 SCO 정상회의 환영만찬에서 "이번 정상회의는 모든 당사국 간의 합의를 도출하고, 협력의 동력을 이끌며, 미래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는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면서 "SCO가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힘을 결집해 인류 문명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우방국 및 국제기구들과 SCO플러스(+) 회의를 열어 협력과 발전의 큰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면서 "SCO는 더욱 큰 역할을 하고, 더욱 큰 발전을 이루며, 회원국 간 단결과 협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톈진 영빈관에서 SC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중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모하메드 무이주 몰디브 대통령,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등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환영만찬에 앞서 만나 비공식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인도가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시 주석은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용과 코끼리의 협력(龍象共舞·용상공무)을 실현하는 것이 양국의 정확한 선택"이라며 갈등 해소를 희망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와 중국은 적대국이 아닌 동반자며, 의견 차이보다 공감대가 훨씬 크다"며 화답했다.
조현 "北, 러 한계 알고 중국과 관계 복원…국제 사회로 나오는 계기"
위성락 "트럼프·시진핑 APEC 참석 가능…김정은 초청 안 할 듯"
반면,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에 한계를 느껴 중국과 관계 복원에 나서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김 위원장의 방중계획과 관련, "그동안 북한이 러시아와 굉장히 가까워졌는데, 아마 러시아의 한계를 알았을 것"이라며 "다소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시킬 기회를 보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조 장관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일단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즉, 중국 중심의 SCO 연대가 확장되는 것이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제대로 된 정상 국가가 되려면 언젠가는 미국, 또 우리와도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장관은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같은날 KBS 라디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지만 김 위원장의 초청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정부가 김 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기대치를 너무 부풀리거나 가능성을 띄우는 발언을 하기는 조심스럽다"고 기대감을 낮췄다.
다만 김 위원장을 초청할 창구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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