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제출한 2026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728조7000억원이다. 최근 5년 중 가장 큰 폭인 8.1% 늘어난 수치이다. 윤석열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묶어놓은 연 3.5% 증가율 상한폭을 2배 이상 늘렸다. 반면에 내년 예상되는 총수입은 674조2000억원이다. 때문에 국가채무는 1415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1.6%로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면서 내년 한 해 지불해야할 국고채 이자는 34조4000억원으로 국민 1명당 67만원 수준이다.
예산안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이다"고 강조했다. 내년 농사를 성공하려면 빚을 내더라도 마중물을 충실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확장재정에 대한 지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써도 구조개혁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면 확장재정은 성장을 유도하는 마중물이 아니라 인플레이션만 자극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국내외 기관들의 내년도 한국경제 성장률은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가령 골드만삭스(2.2%), JP모건(2.1%), 스탠다드차타드·BNP파리바(각 2.0%) 등은 내년도 한국경제 성장률을 2%까지 올려잡았다.
이들 일부 외국 금융사들의 전망은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6%, 1.8%로 제시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낙관적인 수치임을 알 수 있다. 또 한국은행은 내년 물가상승률을 1.9%로 예측하고 있어 국내외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가 대개 실재 수치와 일치한다고 해도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을 밑돌거나 겨우 비슷해지는 수준임을 알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극심한 불황이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한국 경제 앞에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네 가지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때문에 선제적 재정 투입으로 민간 영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경제의 기본 방향을 재설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AI(인공지능),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국가가 선도하는 한편 청년·노인·지역 등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을 재정으로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담은 내년도 예산의 방향은 이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예산이 적절하게 배분되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성 예산은 재정의 유연성을 떨어트리는 역효과 경계해야
정부 예산에서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올해보다 8.2% 늘어난 269조1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7%에 달한다. 복지 예산의 증가율은 전체 총지출 증가율(8.1%)을 살짝 넘어서는 수치다. 이같은 복지성 예산은 한 번 편성되면 되돌리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속된 말을 빌리자면 '주었다 다시 빼앗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2025~2029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 기간 복지 예산은 연평균 6.0%씩 늘어 전체 총지출 증가율(5.5%)을 넘어선다.
대표적으로 신설되는 항목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인 농어촌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가는 예산이다. 인구감소지역 6개 군에 거주하는 주민 24만명에게 월 15만원씩 지급하는데, 내년엔 2000억원을 투입해 시범사업을 해본 후 점차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지역화폐 예산은 1조2000억원이다. 24조원에 달하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기 위해 국비 보조율을 높였는데 수도권 3%, 비수도권 5%, 인구감소지역은 7%이다.
노인 기초연금은 월 34만3000원에서 34만9000원으로 6000원 인상된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관련 예산도 23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청년미래적금 신설에 7000억원을 투입하고 구직활동 중 생계비 부담 완화를 위한 구직촉진수당을 월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한다. 여기에 10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AI 관련 예산은 어떠한가. 올해 3조3000억원에서 세 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편성되었다지만 왠지 부족한 느낌이다. 정부는 AI에 투입될 100조원 규모의 민관합동펀드인 '국민성장편드' 조성을 위해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나머지 99조원은 대기업이나 민간 자본으로 충당할 계획인데 이미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에 수천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약속한 마당에 국내펀드에 자금을 댈 여유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정부는 또 R&D(연구개발) 예산은 올해보다 19.3%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AI, 바이오, 콘텐츠, 방산, 에너지, 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국가 예산으로 수행되는 R&D 과제가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고 실사용자(기업·소비자) 관점이 아닌 공무원·교수 중심 기획이 대부분이어서 이 역시 예산의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고려해야 한다. 예산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효율적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예산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무래도 미래지향형 투자보다는 경직될수 밖에 없는 복지성 예산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이 망가진 이유에서 교훈 얻어야
2012년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일본 경제를 20년 이상 지속된 장기침체('잃어버린 20년')에서 구원하겠다면서 '세 가지 화살'을 준비했는데 우리는 이를 총칭해서 '아베노믹스'(Abenomics)라고 불렀다.
첫 번째 화살은 대담한 통화완화정책이었다. 일본은행(BOJ)이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목표는 '엔저(엔화 약세) 유도→수출 촉진→기업 실적 개선'의 선순한 구조의 완성이었다.
두 번째 화살은 확장적 정부 지출을 통해 인프라 투자, 재난 복구 예산 등으로 단기 경기 부양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세출 확대와 세금 감면을 병행한다는 약간은 모순적인 전략이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세 번째 화살인데,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성장전략으로 이른바 구조개혁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개혁, 규제 완화, 여성·노인 고용 확대, 농업 개방, R&D 장려 등을 적극 추진해서 일본경제의 체질을 장기적으로 개선하고 잠재성장률을 회복한다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돈은 풀었지만, 체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진단이 쏟아져나왔다.
아베노믹스가 본격 출범하기도 전에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일본 정부의 지출이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실패가 예고된다고 고춧가루를 뿌렸다.
미국의 보수 성향 두뇌집단(씽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역시 세 가지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 가운데 첫 번째 화살인 통화정책 완화의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지적하고,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이 공허하거나 정치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날 위험이 있다면서 이때 일본은 경제적 스태그네이션(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엔저 덕에 수출이 살아났고, 일자리도 증가했지만 구조개혁 없는 재정정책은 곧바로 한계에 직면했다. 성장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국가부채는 GDP 대비 260%까지 폭증했다.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 모타니 고스케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일본 경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망국 정책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모타니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명목 GDP는 노다 요시히코 정권이었던 2012년 6조20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엔저를 유도한 아베 정권 말기인 2019년에는 5조1000억달러로 약 20% 줄었고, 엔저가 가속한 2023년에는 4조2000억달러로 3분의 2까지 축소됐다.
모타니 연구원은 결국 "세계가 보는 일본 경제의 존재감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오늘날 일본 경제의 현실을 진단했다.
우리는 아베노믹스라는 말을 '엔저'만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덕택에 매년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만 폭증했다. 일본 엔화 가치가 지난 10여년간 줄기차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조개혁을 뜻하는 아베의 세 번째 화살은 어느 누구도 구경하지 못한 채 일본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오랜 우방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그런 신세가 되었다.
돈풀기는 쉽고 구조개혁은 어렵다는 것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이 '국민복지 확대'와 '성장률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예산안 확정에서 멈추지 말고 '연금개혁 등 구조개혁을 통한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물론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절실한 구조개혁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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