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1] Quna에서 만난 그림, 사람의 얼굴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1] Quna에서 만난 그림, 사람의 얼굴

문화매거진 2025-08-31 20:24:42 신고

3줄요약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이집트에 살고 있는 나는 종종 고대 문명의 흔적을 따라 여행을 다닌다. 그러나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를 보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지역을 걸으며 그곳의 공기를 직접 마시는 일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유적 못지않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속에도 역사의 숨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 이집트 Quna주 나일강. 나일강 위에 작은 배가 떠 있고, 강 너머로 야자수와 마을, 사막 산맥이 펼쳐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 Quna주 나일강. 나일강 위에 작은 배가 떠 있고, 강 너머로 야자수와 마을, 사막 산맥이 펼쳐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 Quna주 농촌. 꽃과 나무가 늘어선 길 위로 당나귀 수레와 농부, 아이가 지나가며 농촌의 일상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 Quna주 농촌. 꽃과 나무가 늘어선 길 위로 당나귀 수레와 농부, 아이가 지나가며 농촌의 일상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몇 해 전, 나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57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 Quna(퀴나)를 찾아가려 했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이슬람과 콥틱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며, 점토 도자기와 전통 도예 기술로 알려진 곳이었다. 농촌의 소박한 풍경, 전통시장의 따뜻한 사람들… 내 머릿속에는 그런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나는 자유롭게 거리를 걸을 수 없었다. 외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경찰들이 모든 일정을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낯선 도시의 삶을 느껴 보기는 커녕, 나는 제약 속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카이로로 돌아와야 했다. 그 기억은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 이집트 카이로 문명박물관(NMEC,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 사진: 한민광 제공
▲ 이집트 카이로 문명박물관(NMEC,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 사진: 한민광 제공


카이로에는 이집트의 긴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명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고대 파라오 시대에서 현대 이집트까지의 흐름을 유물과 영상으로 정리해 놓아 처음 이집트를 접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때때로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소개하는 특별 전시를 열곤 한다.

2025년 8월 29~30일, 바로 그 문명박물관에서 Quna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와야 했던 그곳. 나는 이번 기회에 간접적으로나마 Quna를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가 열리는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찾았다.

▲ 문명박물관 내부 Quna주 문화 전시장 / 사진: 한민광 제공
▲ 문명박물관 내부 Quna주 문화 전시장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장 풍경. 도자기, 직물, 전통 음식, 사진 전시가 한자리에 모여 이집트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 모습이다. 공예와 음식, 사람들의 일상이 어우러져 생생한 문화의 장을 이룬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장 풍경. 도자기, 직물, 전통 음식, 사진 전시가 한자리에 모여 이집트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 모습이다. 공예와 음식, 사람들의 일상이 어우러져 생생한 문화의 장을 이룬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전시장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사진 몇 장,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문명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대적으로 꾸민 전시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작은 시골 마을의 장터를 옮겨놓은 듯한 아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소박함이 오히려 Quna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유적 대신, 그곳의 사람들과 일상이 전시의 중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 아랍어로 ‘예술가 마날 아부 알-하산 전시회’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아랍어로 ‘예술가 마날 아부 알-하산 전시회’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그러던 중 내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Quna 출신의 여성 화가, ‘마날 아무 알-하산(Manal Abu al-Hasan, منال أبو الحسن)’의 그림들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이 있었다.

▲ 마날 아부 알-하산의 작품들(1).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 빵을 이고 환하게 웃는 여인, 사탕수수에 기대어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이집트 농촌의 삶과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을 전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마날 아부 알-하산의 작품들(1).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 빵을 이고 환하게 웃는 여인, 사탕수수에 기대어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이집트 농촌의 삶과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을 전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마날 아부 알-하산의 작품들(2). 전통 복장을 입은 남자가 음료를 따르는 장면과 큰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집트 농촌의 일상과 삶의 무게를 담아낸 작품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마날 아부 알-하산의 작품들(2). 전통 복장을 입은 남자가 음료를 따르는 장면과 큰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집트 농촌의 일상과 삶의 무게를 담아낸 작품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첫째, 그림은 사실적이고 따뜻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의 손끝, 머리에 빵 바구니를 인 여인의 환한 미소, 사탕수수에 기대어 서 있는 소녀.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은 세밀하게 묘사되었지만, 배경은 부드럽고 포근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보는 순간 기록화라기보다 삶의 한 장면을 정성스레 간직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의 손길과 숨결이 스며든 풍경이 화폭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둘째, 작품은 전통과 민속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당당히 선 여인, 갓 구운 빵을 이고 가는 농촌 여성, 차를 따르는 거리의 상인, 그리고 들판과 종려나무를 배경으로 선 시골 사람들. 소박한 옷차림, 머릿수건, 바구니와 빵 같은 소품이 모두 ‘이집트적인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세련됨 대신, 오래된 농촌과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급격히 변하는 현실 속에서 잊히기 쉬운 농촌과 민속의 가치를 기록하려 했던 듯하다.

셋째, 무엇보다 강렬했던 것은 인물들의 표정이었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 깊은 생각에 잠긴 눈빛, 정면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시선. 특히 여성의 얼굴에서는 자신감과 존엄이 느껴졌다. 단순히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의 모습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그 표정 속에 담겨 있었다. 그녀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나는 그림 속 인물들이 화폭을 넘어 실제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 전시된 물품. 앉아서 음식을 먹는 농촌 남성과 전통 화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소박한 일상과 사라져가는 생활 도구를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된 물품. 앉아서 음식을 먹는 농촌 남성과 전통 화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소박한 일상과 사라져가는 생활 도구를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된 사진들. 이집트의 일상과 사람들을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들로,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존엄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된 사진들. 이집트의 일상과 사람들을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들로,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존엄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나는 그림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왜 이렇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 그림들이 단순히 ‘예쁘다’는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 머리에 빵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 시골길을 걷는 아이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같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당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또 그림 속에는 ‘우리의 뿌리’를 잊지 말자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도시가 커지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옛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옛 의복과 소품, 전통적인 농촌 풍경을 계속 화폭에 담았다. 단순히 옛날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특히 눈길이 간 것은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림 속 여성들은 늘 웃거나, 꿋꿋하게 서 있거나, 자신감 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집안일이나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 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Quna라는 도시의 시장을 실제로 걸어본 적이 없다. 몇 해 전에는 그곳에 발을 들였지만, 사정상 머물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었다. 그런데 ‘마날 아무 알-하산’의 그림 앞에 서 있는 동안, 마치 그 도시의 골목을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준 셈이었다. 이것이 예술의 힘 아닐까 싶다. 직접 가지 않아도, 직접 만나지 않아도, 그림 속 시선과 표정만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느낄 수 있다.

Quna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회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박한 그림들 속에는 “보통 사람들의 삶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화려한 유적에서 느낀 것 못지않은 깊은 울림을 받았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