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철강업계가 중국산 공급과잉, 미국의 고율 관세, ‘노란봉투법’ 시행 등이 겹치며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관세 완화 기대가 사라지며 이를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신흥시장 공략·현지 투자 등 장기 대응책을 모색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노사 갈등 책임이 원청까지 확대되는 법 개정으로 경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 ‘뉴노멀’ 된 관세에 전략 모색
3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철강 관세 완화는 끝내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조선, 원전, 방위비 등 전략 산업에 집중한 결과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36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립을 언급했지만, 철강 관세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다.
미국은 지난 6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했다. 조치 즉시 발효되며 한국 철강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은 한국 전체 철강 수출의 약 10%를 차지하지만, 자동차용 강판과 강관, 스테인리스 파이프 등 고부가가치 품목 비중이 높다.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은 전년 동월 대비 24.3% 감소한 19만4000톤에 그쳤고, 하반기 들어 감소 폭이 더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관세율 자체가 너무 높아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현지 고객과의 거래 유지를 위해 판매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영업이익 축소로 이어진다.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수출 전반에도 부정적 파급이 불가피하다. 결국 철강사들은 이번 조치를 일시적 변수가 아닌 장기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포스코는 인도 합작사 JSW와의 일관제철소 증설로 연 600만 톤 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을 병행하며 고객사 다변화에 나섰다. 세아제강도 세아스틸USA 가동률을 2023년 52%에서 올해 상반기 60%로 끌어올렸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관세는 더 이상 일시적인 변수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결국은 새로운 시장을 찾거나 현지 투자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철강업계의 또 다른 뇌관
철강업계의 부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노사 관계가 한층 복잡해졌다. 법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원청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더 폭넓게 부담하도록 한다.
철강업계는 본사·계열사·하청업체 간 수직적 위계가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주요 생산공정에서 외주 인력이 다수를 차지하며,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원청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개정으로 이 구조가 법적 책임까지 확대되면서 기존보다 훨씬 광범위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는 전통적으로 강성 노조와 장기간 갈등을 겪어왔다. 현대제철은 2007년 첫 전면 파업 이후 2022년 최장기 파업, 2024년 직장폐쇄까지 이어졌고, 포스코도 임금협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은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세는 장기 과제, 노란봉투법은 산업 전반 악영향”
전문가들은 미국이 수입해오던 철강 수요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따라 국내 업계의 파급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며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또 노란봉투법은 외주 의존도가 높은 철강업계에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해, 노사 갈등이 원청 책임으로 번질 경우 경영 불안이 그룹 차원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의 철강 고율 관세는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며 “정부와 업계는 철강 수급과 가격 변화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차기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란봉투법은 외주 의존도가 높은 철강업계에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이나 파업까지 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사실상 정규직과의 구분이 모호해져 기업은 외주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고, 가장 큰 피해는 중소 협력업체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특히 “기업들이 철수한 뒤에야 법을 다시 손보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며 “산업 기반이 무너진 뒤에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사전에 정교하게 조율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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