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건보료 부과 논쟁,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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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건보료 부과 논쟁, 어디로 가나

직썰 2025-08-31 09: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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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현판. [건보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현판. [건보공단]

[직썰 / 안중열 기자] 퇴직연금(IRP)과 연금저축 등 사적연금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할지 여부가 다시 한 번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일정 금액 이하 사적연금 소득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며, 이 논쟁은 단순한 찬반 구도를 넘어 정책의 정합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시험하는 전략적 실험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 현행법과 관행 사이의 충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현재 건보료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소득에는 부과되지만, 퇴직연금(IRP)·연금저축 같은 사적연금 소득에는 사실상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보험법과 소득세법은 사적연금 소득 역시 부과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과 현실이 엇갈려 있는 상황이다.

감사원은 2022년 보고서에서 “사적연금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데도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고,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부과 제외에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회 법제실도 최근 “현재 공단의 사적연금 비부과는 법령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건보공단은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조치”라며 방어 논리를 편다. 공단 관계자는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고려해 불가피한 유연 운영을 해왔다”고 설명하며, 단순한 법 적용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고려한 접근임을 강조했다.

◇형평성과 재정 안정 vs 이중과세와 가입 위축

찬성론은 형평성과 재정 안정을 강조한다. 고액 사적연금 수급자가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며 건보료를 내지 않는 반면, 소득이 적은 지역가입자는 매달 수십만 원씩 부담하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과세 대상 사적연금 규모가 이미 3조원에 달하는 만큼, 이를 방치하면 제도 신뢰가 무너지고 건보 재정 불균형도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 한 관계자는 “소득 있는 곳에서 보험료를 매긴다는 원칙은 건보 재정의 기본이자 신뢰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대론은 이중과세 문제를 부각한다. 이미 세금을 낸 소득으로 적립한 연금에 다시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은퇴자 단체들은 “정부가 그동안 사적연금 가입을 권장해놓고 이제 와서 또다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정책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반발한다. 실제로 일부 은퇴 예정자들은 “언제든 건보료가 매겨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노후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노후 소비 패턴과 세대 갈등의 구조

만약 사적연금 건보료 부과가 현실화된다면 은퇴자의 소비 패턴은 구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중산층 은퇴자는 의료·주거비 절감을 위해 지출을 줄이게 되고, 이는 내수 위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고소득 은퇴자는 세부담 회피를 위해 세제 혜택이 큰 투자 상품이나 해외 이주를 검토하는 흐름이 생길 수 있다.

이 논쟁은 곧 세대 갈등으로 이어진다. 현역 세대는 “노인 세대의 연금 소득에도 공정하게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은퇴 세대는 “이미 일생 동안 세금을 냈는데 또다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맞선다. 따라서 이번 논의는 단순히 재정 안정의 문제가 아니라 ‘부담의 세대 간 분배 구조’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 과정이기도 하다.

◇절충 모델의 필요성과 금융시장 파급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일정 금액 이하의 사적연금 소득에는 건보료를 면제하는 절충안을 담았다. 김 의원은 “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지는 가운데, 사적연금에 건강보험료를 매기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이번 개정안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국민의 안정적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더욱 구체화해 ▲저소득층 전액 면제 ▲중간 소득층 부분 경감 ▲고소득층 전면 부과의 ‘3단계 절충 모델’을 제안한다. 이는 위법 논란을 정리하면서도 저소득 은퇴자의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형평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시장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연금저축·IRP 가입 안정성이 높아지고, 은행·보험사는 저소득층 특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반면 중산층 이상에게는 부과 기준 강화로 ‘비과세 투자 상품’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으며, 해외 ETF·채권·부동산 리츠 등 대체 투자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형 해법, 제도의 첫 시험대

보건복지부는 “건보 재정 기반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국민 수용성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제도 설계의 시험대에 놓여 있다.

해법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빈곤 심화와 재정 악화를 모두 피할 수 있는 절충 모델에 있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연금과 건보료 문제를 넘어 노후 소득 보장과 건강보험 재정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정밀하게 설계하느냐를 가르는 첫 번째 실험이자, 앞으로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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