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망자와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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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망자와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마라"

연합뉴스 2025-08-31 07:00:03 신고

3줄요약

참혹한 현장 투입되는 소방관들 PTSD 시달려

"눈감으면 망자의 눈 보이는 것 같아 잠못 이뤄"

"지금도 불탄 시신 등 사고 현장 반복적으로 생각나"

소방노조, 체계적·의무적 치료 요구…"장기 지원해야"

"정신질환 치료 꺼리는 분위기…다들 티 내지 않아"

순직 소방관 맞이하는 동료들 순직 소방관 맞이하는 동료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서윤호 인턴기자 =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으로 출동할 때만 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출동 중 휴대전화로 동영상 등을 확인하고 큰 사고임을 알았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조용운 인천소방학교 소방위)

"교통사고로 구조대상자의 얼굴 절반이 날아갔던 현장이나 살해 후 방화로 배에 칼이 꽂히고 불탄 시신 등을 목격했던 현장이 지금도 반복적으로 생각이 납니다. 2010년대 이전의 일이었기에 당시에는 PTSD에 대한 인식이 미비해 아무런 사후 지원이 없었습니다." (A 소방경)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면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심각성이 주목받고 있다.

박종익 강원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교수는 PTSD로 일상 영위가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2차적으로는 우울증·불안장애 같은 질환이 발병하며 심할 경우 폐인이 될 수 있는, 조현병보다도 심각한 증상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침통한 용산소방서 소방관들과의 간담회 2022년 침통한 용산소방서 소방관들과의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2022년 11월 9일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대응에 나섰던 소방관들 간담회. 한 소방대원이 울먹이며 당시 상황을 전하자 참석자들이 침통해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8.31

◇ "조현병보다 심각한 증상으로 치닫는 경우도"

31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PTSD는 처음에 군인이나 사고 후에 일어나는 독특한 정신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진단명이었다.

과거에는 전투피로증, 총체적 스트레스 반응, 신경증적 반응, 상황 반응 등 다양한 용어로 설명했으나, 1980년대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하고 있다.

자세한 진단 기준은 시대별로 다르고, 미국정신의학회와 세계보건기구의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실제 죽음이나 죽음에 대한 위협, 심각한 부상,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고 1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면 진단될 수 있다.

증상으로는 반복적이고 불수의(자기 마음대로 되지 아니함)적인 외상 기억, 해당 기억에 대한 회피, 사건의 원인이나 결과에 대한 왜곡된 인지, 지속적인 각성과 반응·무모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 등이 있다.

소방관이나 참전 군인처럼 재난·폭력·전쟁 등 극심한 외상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 두려운 기억을 잊지 못하고 심각한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공포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희미해지지만, PTSD 환자에게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사이에서 발생한 증상을 계기로 PTSD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며 "흔히 죽음과 관련된 직·간접적 경험 이후 그 상황을 플래시백·악몽 등으로 재경험하게 되며, 주요한 증상으로는 교통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더 이상 운전을 못 하거나 경적에 크게 놀라는 등 회피 증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문제는 이러한 증상과 함께 주변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사회적인 관계가 축소되고 전반적인 일상 영위와 대인관계, 직업적 능력이 모두 손상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방대원 절반 가까이 우울·수면장애…정신건강 적신호 (CG) 소방대원 절반 가까이 우울·수면장애…정신건강 적신호 (CG)

[연합뉴스TV 제공]

◇ "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들, 과연 무뎌졌을지 의문"

일반인은 평생에 한 번 목격하기 힘든 사고 현장이나 사체를 흔히 접하는 소방관은 크고 작은 PTSD를 겪는다.

이태원 참사·세월호 참사 등 대형 사고 현장을 경험했던 조용운 인천소방학교 소방위는 "출동했던 현장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고는 하는데, 그것도 PTSD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다 이태원을 지나치면서 당시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가 다시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당시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대체로 이러한 상황에 무뎌진 듯 행동했지만, 과연 무뎌졌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진영 여의도119안전센터 소방위는 "'사수'로써 업무를 가르쳐주고 현장 생활을 조언해줬던 후배가 순직하거나 힘든 업무를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는 후배도 있었다"며 "그럴 때면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나 싶은 죄책감이나 부채감이 들고는 한다"고 토로했다.

김화중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노조 부위원장은 "소방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가 현장에서 목을 맨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 있다"며 "눈을 감으면 망자의 눈이 보이는 것 같아 2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2009년의 일이었던 만큼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며 "선배들과 술을 마시며 '망자와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마라'는 조언을 듣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1000일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10.29 이태원 참사 1000일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10.29 이태원 참사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천일째를 맞은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모습. 2025.8.31

◇ "치료 권고 넘어 의무 치료·평생 치료 시스템 필요"

소방청의 '이태원 투입 소방공무원 PTSD 상담 실적'에 따르면, 2022년 10월 31일부터 2023년 9월 30일까지 1천316명이 긴급 심리 지원을 받았고, 이 중 142명이 심층 상담을 받았다. 병원 연계 진료를 받은 사람 역시 142명이다.

소방노조는 더욱 체계적이고 의무적인 치료를 요구한다.

이창석 소방노조 위원장은 "현재 찾아가는 심리상담을 통해 잠재된 PTSD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치료는 아니다"며 "직원들이 찾아갈 수 있는 심리치료를 위한 전문 의료센터를 소방청에 요구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제적으로 자립도가 부족한 지역 등에서는 협력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지역별 편차를 줄이고 접근이 용이한 정신건강의학과와 협력을 늘려 소방관이 스스로 이상 징후를 느낄 경우 자주 찾아가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금도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크고 작은 충격적인 경험을 누적하고 있다"며 "자신의 PTSD를 숨기려 하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현재의 치료 권고를 넘어 의무적인 전문 치료와 평생 어디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소방청의 정신건강 지원책이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B 소방관은 "올해 초 심리상담 결과 점수가 높게 나왔다며 한 달 뒤 다시 연락이 온다더니 석 달이 훨씬 지난 지금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상담결과가 얼마나 상위 부서로 전달돼 위험군을 추적 관리하는지도 의문"이라며 "정신질환과 그 치료에 대해 사회뿐만 아니라 소방관 사이에서도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알아차릴 뿐 평상시에는 다들 티를 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24년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2024년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무안=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작년 12월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8.31

◇ "소방청 고위직들이 심각성 인지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전문가들은 더욱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소방관이라는 직업 자체는 항상 PTSD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앞으로도 PTSD와 관련된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며 "PTSD에 노출된 이들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위험군의 선별·분류 및 신속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에서의 인식도 중요하지만 소방청의 고위 관계자들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PTSD 치료를 위한 장기간 지원에는 조직 문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소방청의 인력 투자와 함께 드러내기 힘든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명성은 철저히 보장하되 업무와 관련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신호가 있다면 조직 차원에서의 치료·진단을 권고해야 한다"며 "PTSD에 대한 초기 대처는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장기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미진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재 이태원 참사, 무안 제주항공 참사에 참여했던 소방관 약 3천명의 심리상담과 집중상담, 연계치료까지 추진 중"이라며 "심리상담 이후 치료의 경우 전액 지원하고 있고, 익명성 보장을 위해 금액 지원 절차와 인원을 최소화해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 6월 충북 음성군에 개원할 국립소방병원에 정신건강센터를 신설해 운영할 계획"이라며 "2028년 건립을 목표로 강원도 강릉시에 소방관 심신수련원을 추진해 프로그램을 통한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oukno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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