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문명으로의 전환기
인류는 지금 거대한 우주 문명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에 이은 AI혁명을 거쳐 이제는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나아가는 ‘우주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첫 번째 무대가 바로 달과 화성이다. 달을 시험무대로 삼고 화성에서 정착하는 것이다. 이른바 ‘달-화성(Moon to Mars)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50여 개 나라가 참가하고 있다. 한국은 10번째 가입했다.
화성은 지구와 닮았지만 동시에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행성이다. 지름은 지구의 절반, 중력은 38%에 불과하다. 대기의 95%가 이산화탄소인데 기압은 지구의 0.6% 수준이어서 사실상 진공에 가깝다. 화성에서는 우주복이 없으면 30초 만에 실신하고, 1~2분 만에 사망한다. 화성의 평균 기온은 영하 63도로 엄청나게 춥다. 지구의 자기장은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막아주지만, 화성에는 자기장이 없어 태양풍과 은하우주선(GCR) 등 우주 방사선이 그대로 쏟아진다. 화성에서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상태로 장기 체류하면 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신경계가 손상된다.
화성, 영하 63도에 공기 희박, 우주복 없으면 1~2분 만에 사망
그럼에도 인류가 화성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문명 백업이다. 지구의 역사는 빙하와 홍수, 대규모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등 여러 차례의 환경 변화로 간헐적인 멸종 과정을 거쳤다. 앞으로도 기후 위기, 핵전쟁, 대규모 전염병 등 재앙적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혹시라도 대재앙으로 인류가 멸종할 위기에 처할 경우 대안적인 행성은 화성이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다.
둘째, 인류는 화성을 기반으로 소행성에서 자원을 채굴하는 등 새로운 우주경제를 만들 수 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대가 있는데 이 소행성에는 경제적 가치가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다. 어떤 소행성은 그 자체가 철광석과 희토류, 백금 덩어리인데 각각이 최소한 1경 달러(1조 달러의 1만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그런데 화성은 중력이 작아 지구에서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도 우주로 오갈 수 있다. 화성이 소행성 자원 채굴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화성은 과학 차원에서 보물창고다. 화성은 오래전 물과 대기가 존재했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생명 기원을 탐사할 수 있고, 다양한 자원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류는 화성을 전진기지로 더 깊은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인류는 화성 개척을 시작으로 21세기 말쯤엔 태양계의 끝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따라서 화성 이주는 단순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인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응답을 찾을 수 있는 첫 단추다.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우주의 한 조각이 스스로를 인식한 존재다"라고 말했다. 우주의 한 조각인 인간이 우주를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우주 대항해시대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은 인류의 우주 진출에 중요한 행성이지만, 순식간에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다. 그래서 화성에서의 생존은 ISRU(In-Situ Resource Utilization, 현지 자원 활용)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구와 화성의 거리는 평균 2억 2500만㎞이며, 오가는데 편도 7개월 이상 걸린다. 많은 인원이 화성에서 살아가기 위해 모든 물자를 지구에서 가져가기란 불가능하다. 비용과 시간이 감당 불가다. 따라서 화성에 있는 현지 자원을 활용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화성 대기에서 산소를 추출하고, 지하 얼음을 채굴해 물과 연료를 생산하며, 화성 토양인 레골리스를 건축자재로 활용해 거주지와 도시를 건설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NASA는 2021년 화성에 착륙한 퍼서비어런스 로버에 실린 ‘MOXIE’ 장비로 화성 대기의 주성분인 CO₂를 전기분해 방법으로 산소 추출에 성공했다.
CO₂ 대기 → 전해(MOXIE 원리) → O₂ 산소 생산
지하 얼음 채굴 → 정수 저장 → 전기분해 → O₂ + H₂ 분리
H₂와 CO₂ → 사바티에 반응기 → 메탄(CH₄) + 산소(O₂) 연료 생산
또 화성에서 CO₂와 수소(H₂)를 반응시켜 메탄(CH₄)과 물(H₂O)를 생산할 수 있다.(CO₂ + 4H₂ → CH₄ + 2H₂O) 이를 ‘사바티에(Sabatier) 반응’이라고 한다. 이 반응으로 생산한 메탄은 스페이스X 스타십이 화성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연료로 쓰인다. 우주항공청이 차세대 우주 발사체로 그동안 활용한 케러신(등유)을 연료로 사용하는 로켓(누리호 방식)이 아니라 메탄을 사용하는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하려는 이유다. 화성에서는 케러신을 구할 수 없지만, 메탄은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성 지하에 매장된 얼음은 소형 원자로인 우주용 SMR로 녹여 물을 생산하고, 물은 다시 전기분해로 수소와 산소를 생산할 수 있다. 화성에서 생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화성에서 살아가기 위한 현지자원(ISRU) 활용 기술 개발
이러한 화성에서 주거를 위한 ISRU 활용에는 대규모 상업적 설비가 필요하다. 화성에서 주거지와 도시 건설은 극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대형 플랜트 사업과 유사하다. ‘우주 플랜트사업’이다. 산소·수소·메탄을 제조하는 화학 플랜트, 폐수를 정화하는 수처리 시설, 화성 토양 레골리스를 활용해 구조물을 만드는 건축 플랜트가 통합적으로 적용된다. 태양광과 우주용 소형 SMR을 결합한 발전소, 폐쇄형 생태계 기반의 농업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지구에서 이미 존재하는 산업기반이다. LNG 액화플랜트, 해양 원유 시추선, 북극권 에너지 인프라 등 기술, SMR 원자력발전소, 스마트팜 등과 유사하다.
대한민국이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플랜트산업을 화성에 활용
대한민국이 우주산업을 선도할 기회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플랜트 EPC(설계·조달·시공) 능력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HD현대와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설비), 극지 드릴십을 제작해왔다. 극한 환경 속에서 대규모 플랜트를 운영한 경험도 축적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두산에너빌리티, 한화 등은 원자로와 화학·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POSCO와 LG화학은 레골리스 건축에 필요한 금속·폴리머 소재를, 삼성전자는 방사선 내성 전자장치를 공급할 수 있다. 최근 방문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레골리스에 고온의 마이크로파를 쪼여 소결하는 방식으로 벽돌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물 없이 벽돌을 만드는 기술이다. 레골리스 벽돌은 화성 도시 건설에 핵심적인 자재가 된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은 ‘우주 EPC 국가’로 도약할 충분한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 화성 도시 건설과 우주 원자로 개발 능력 갖춰
결국 화성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 도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과제는 모두 한국의 산업경쟁력과 연관이 있다. 수소경제, 스마트팜, 폐수 재활용, 극한 환경에서 건설, 미세먼지 기술 등이다. 따라서 한국이 화성 개척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시급하다. 최소한 2035년 이전에 화성용 SMR 개발과 우주 플랜트 사업을 연구개발과 지구에서 시험 등이다. 달이나 화성에 갈 수 있는 발사체가 없다고 해서 달과 화성 개발 참여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5월 우주항공청을 개청했을 당시 미국 등 우주 선진국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의 열악한 발사체와 인공위성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기반이었다고 한다. 극한의 환경에서 수많은 공사를 해본 한국의 경험이 우주 개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의지다. 화성이 더는 단순히 실험실이 아니다. 화성은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 시험대이며, 한국이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의 창이다. 이런 차원에서 ‘K-ISRU 5대 과제’를 국가전략으로 지정하고, 국제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EPC 분야에서 쌓아온 역량을 우주로 확장한다면, 우리는 ‘지구의 조선·플랜트 강국’을 넘어 ‘우주의 EPC 강국’이라는 새로운 위상을 얻게 될 것이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