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업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은 지금과 미래를 엮어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가능했다. 버티겠다거나 지속하려는 고민보다 작업을 하는 사람의 범위에 스스로를 넣는 게 다급했다. 매일매일 의지를 다지며 열정 페이 같은 마음으로, 제 시간과 체력을 써서라도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작업실이 생겼고 나에게는 언제든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그 열정보다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작업이 늘어진 공간에서 계속해서 깨닫는 중이다.
처음 작업실이 생겼을 때는 인테리어 고민 없이 적재 가능한 곳, 데스크톱을 놓을 수 있는 곳 정도를 고민하며 이것저것을 배치하게 되었다. 해외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하며 작업실에 애정을 갖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이주자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며 이상하게 들러붙은 기분이다.
내 작업실의 검은색 책상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선반이 안 어울린다는 것을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하루빨리 철제 선반으로 변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드디어 한다. 하루에 가장 오래 있는 작업실에서 2년을 보내고서야 작업실이 집보다 칙칙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경과 내 주변에 구성해 놓은 것들이 작업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다른 방을 쓰고 있는 작가님의 공간을 방문했다. 나와 같은 구조와 크기를 가진 방이었지만 여러 경험을 가진 그의 세팅 값은 단시간에 그곳을 자신만의 작업실처럼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작업 공간의 가장 큰 벽은 진행 중인 작품의 몫이 되었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다양한 스케치들로 그곳이 채워졌다. 그의 작업실임을 알기에 충분했다. 컴퓨터와 인쇄기 하나가 놓여 있는 방에는 처음부터 의아할 정도로 의자가 많았고 많은 이가 그 방을 왔다 갔다 했다. 작업실은 매번 변화했고 작업도 많아졌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작업을 진행하며 작업실을 가진 작가의 마인드를 생각하게 해준다.
혼자 쓰는 작업실을 방문했다. 깔끔한 흰색 작업실의 높은 층고를 보며 왠지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나도 다 가지고 있는 것들에 둘러싸인 공간임에도 깔끔한 작업실에 계속 입맛을 다시게 된다. 흰 벽에는 몇 점의 리서치 중인 작업들이 걸려 있었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같은 문장 하나가 잘 보이게 적혀 있었다. 데스크톱에서 하는 일을 위한 공간과 작업을 위한 공간은 분리가 되어있었고, 작업과 리서치를 위한 공간은 누구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작업과 결이 맞는 그 공간을 바라보며 내 작업이 내 작업실과 결이 맞는지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나의 작업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이제 한 해가 꽤 많이 지나갔고 가끔은 연말을 상상한다. 약간은 쌀쌀해진 날씨에 외투를 꺼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곧 그런 날이 도래할 것이다. 작업실이 없던 시절부터 작업실이 생긴 지금까지 그리고 또 다른 작업실로의 이사까지 나에게 있을 다양한 일들이 자꾸만 무섭고 자꾸만 기대된다.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짐과 결과물과 과정이 놓이는 그 공간은 작업실이라고만 불리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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