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8월이 지나간다. 결과물을 발표해야 하는 날이 다가온다. 자잘한 일을 쉽게 까먹거나 놓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할 일을 적어 내려갈 작은 달력을 마련했다. 다이어리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데스크톱과 휴대폰 어플 그리고 다이어리, 이렇게 세 개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생기는 각자의 틈으로 작은 할 일이 조용히 먼지처럼 쌓여간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의 해야 하는 일들을 와다다 적어놓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지우며 다이어리를 채웠다. 프로젝트도 작업도 또 다른 기회도 아무것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하루에도 3~4가지 역할을 소화해야 했기에 다이어리는 필수였다. 어쩌면 그때는 그 모든 일이 처음이라 하나의 일이 막중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만이 유일한 휴식처럼 느껴지던 그 시기 동안 나는 꽤 좋은 피로 단련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여러 스킬을 요했지만, 개중 가장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일은 ‘연락하기’ 또는 ‘요청하기’였다. ‘연락하기’와 ‘요청하기’에 속하는 일은 대부분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상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말을 정리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리곤 했다. 특히나 그 연락이 첫인상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메일이나 메시지 문장 하나를 두고 하루 이틀 동안 읽고 고치고, 고쳤다. 그리고 그 수정의 시간이 길어지면 다음 날로 할 일은 넘어가서 내일의 할 일이 오늘이 할 일이 되어 항목이 하나 더 늘어났다.
지금까지도 ‘연락하기’ 카테고리의 할 일은 자주 미루는 편이다. 부끄러워서 미루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미루고 너무 늦은 새벽이라 미루게 된다. 일을 부탁하는 것과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일은 자주 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
비슷한 업무로는 ‘문의하기’가 있다. 주로 견적 문의로 진행되는 ‘문의하기’는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업체의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검색하던 블로그에 적힌 메일로 연락한다. ‘업체’와 ‘고객’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잠재) 고객으로서 원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목표로 두면 딱히 어려울 것은 없다. 적어도 7~8개의 업체에 문의를 넣어두어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연락처나 메일을 알게 될 때마다 느껴지는 단순한 쾌감도 있다. ‘요청하기’와 ‘연락하기’는 비슷한 할 일임에도 그 감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도 네 개의 업체에 문의하기를 넣고 눈을 질끈 감았다. 메일의 ‘send’ 버튼을 눌렀다. 하나의 할 일이 지워진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쌓여 다이어리의 하루의 칸을 조금씩 넘나들고 있다. 갈대숲에서 수련하는 사무라이를 떠올리며 할 일을 챙챙 쳐내는 나 자신을 종일 바라보고 있으면 꽤 재미있다.
다른 날과 비교했을 때 오늘도 크게 바쁘지 않지만, 요즘은 마음 한구석이 매일매일 불편하다. 할 일이 내 가까이 오면 나는 고개를 돌려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본다. 이제 볼까지 닿아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된 할 일을 제외하고는 핸드폰을 들고 침대로 올라가 릴스와 쇼츠로 생각이 새어 나오는 구멍을 틀어막고, 이불로 한 겹 더 단단히 감싼다. 오늘도 누워버린 것이다. 자잘한 할 일들이 쌓여 방안 한구석에 쌓인 책보다 높아졌음을 알고 있다. 미뤄오던 연락은 내일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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