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혁신 바이오 대어’로 주목받은 신라젠이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은 약 1조 1,161억 원으로, 코스닥 33위에 올랐다. 당시 바이오 기업 가운데 중상위권 규모였지만, 시장의 기대는 남달랐다.
공모가 9,000원에서 출발한 신라젠의 주가는 상장 후 11개월 만인 2017년 11월 21일, 13만 1,000원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은 약 8조 7,000억 원으로 불어나 코스닥 2위를 차지했다. 장중 최고가는 15만 2,300원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열기를 보여줬다.
개인투자자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2020년 말 기준, 신라젠 주주 수는 약 17만 4,000명에 달했으며, 이들이 보유한 지분은 전체의 92~93%였다. 단일 종목으로는 드물게 대규모 ‘개미군단’을 형성한 것이다.
사진=신라젠
상장 직후부터 일반 투자자의 관심을 집중시킨 신라젠은 불과 1년 만에 공모가 대비 10배 급등하며 대표적 바이오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그때 그 주식’에서는 신라젠의 상장과 폭등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투자 여정을 되짚어본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신라젠 투자 주도 및 대중 입소문 확산
바이오기업 신라젠의 궤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장 이전 자금 조달 구조와 투자자 구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핵심 변수는 단연 밸류인베스트코리아(Value Invest Korea, VIK)였다. 상장 직전 신라젠 지분 약 14%를 보유했던 VIK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를 넘어 사실상 회사 성장의 동력 공급자 역할을 담당했다.
2014년 말 기준, VIK는 전환사채(CB)와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주식으로 전환하며 신라젠의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직접적인 경영 개입은 하지 않고 의결권을 신라젠 경영진에 위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장 준비와 기술특례 상장 심사에 필요한 자본 안정성 확보를 가능케 한 자금줄이었다.
사진=생명공학, 바이오, dna
가장 중요한 자금 투입은 2013년~2014년 기간 약 438억 원 규모 투자로, 이를 통해 신라젠은 미국 임상 바이오기업 제네릭스(Jennerex)를 약 1,600억 원에 인수할 수 있었다. 제네릭스는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Pexa-Vec)’의 원천 특허를 보유한 회사였다. 신라젠 전 대표 역시 재판 과정에서 “VIK의 자금이 없었다면 제네릭스 인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증언할 만큼, 당시 VIK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이 투자를 계기로 신라젠은 글로벌 신약 개발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확보했고,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도 본격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VIK의 실체는 이후 1조 원대 불법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으로 드러났다. VIK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약 3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총 7,000억 원대 자금을 무인가 방식으로 모집했으며, 이를 신라젠을 포함한 다양한 바이오 기업 투자 명목으로 포장했다. 결과적으로 VIK 전 대표 이철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VIK가 신라젠 투자를 집중적으로 홍보했던 배경에는 자금 모집 목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우석 박사 초청 강연회 등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며 신라젠을 미래 바이오산업 혁신의 상징으로 포장했고,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공격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았다. 신약 임상 성공 시 폭발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바이오산업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개인 투자자들의 심리를 강하게 자극했다.
제네릭스, 신라젠 기술특례상장의 핵심
신라젠의 미국 제네릭스(Jennerex) 인수(2014년 3월, 약 1억5천만 달러)는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승부수’로 불린다. 연구 역량이 제한적이던 신라젠이 글로벌 신약 기업으로 도약할 모멘텀을 확보한 사건이었다. 이 인수는 이후 2016년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으로 이어졌고, 2017년 주가 급등의 기폭제가 됐다.
핵심은 제네릭스가 가진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Pexa-Vec, JX-594)’이다. 간암, 대장암, 신장암 등 고형암을 타깃으로 한 펙사벡은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감염해 파괴하는 기전을 지닌 항암바이러스 후보물질이다. 기존 항암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혁신성 때문에 업계의 기대가 집중됐다. 실제로 2013년 임상 2상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연구 결과가 Journal of Clinical Oncology(JCO) 등 권위 있는 학술지와 주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비록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과 같은 최고 수준 저널에 게재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임상 연구자 네트워크에 신라젠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는 충분했다.
사진=픽사베이 (바이오, 알약)
2006년 설립된 신라젠은 당시까지 매출 기반이 미미한 초기 연구개발 단계 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네릭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글로벌 임상 인프라와 연구 파이프라인을 손에 넣었고, 단숨에 ‘글로벌 신약 개발사’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스토리텔링’은 기업가치 재평가의 직접적 동력이 됐으며, 2017년 신라젠 주가가 13만 원대 고점을 기록할 때까지 가장 중요한 성장 서사로 작용했다.
신라젠이 제네릭스 인수에 과감히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펙사벡의 기술·시장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암세포 파괴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은 차세대 항암 분야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이는 초기 벤처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내는 핵심 근거가 됐다. 신라젠은 인수에 앞서 소수 지분 투자를 통해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한 뒤, 전량 인수 방식으로 제네릭스를 흡수함으로써 펙사벡과 관련한 권리를 100% 확보했다.
장외 주식 시장, 신라젠 인기 종목이었던 까닭
신라젠의 상장 전후 궤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외 주식 시장에서 형성된 과열 기대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신라젠은 장외시장에서 수차례 활발히 거래되며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2015년 12월 발행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 신주가 불과 주당 3,500원 선에 거래되었던 사례도 기록된다. 이후 신라젠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가파른 프리미엄을 형성하며 ‘바이오 열풍’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 같은 관심의 배경은 명확했다. 신라젠이 보유한 항암바이러스 신약 후보물질 ‘펙사벡(Pexa-Vec)’에 대한 기대였다. 펙사벡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감염·파괴하는 기전을 가진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로, 상장 1년 전 간암 임상 3상 진입에 성공하며 ‘국내 기업이 글로벌 항암 창약에 진입했다’는 상징성을 확보했다. 이는 불확실성이 높은 바이오 산업에서 드문 성과로 평가되면서 투자자들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2016년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과정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신라젠의 공모가 밴드는 1만5천 원~1만8천 원으로 제시됐지만, 장외 시장에서는 이미 훨씬 높은 가격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한정된 전환사채(CB)·주식 물량에 기관과 개인 투자자의 수요가 집중되면서 형성된 ‘희소성 프리미엄’이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곧 상장 직후 주가 급등세의 전조이자, 이후 과열 양상의 서막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 주목할 부분은 투자자 구성의 특수성이다. 신라젠 장외 주식의 주요 매수자는 의료계 종사자와 고액자산가 등 전문직 투자자였다. 이들은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와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류했고, 일부 현직 의사들은 학술자료나 임상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대중 투자자보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이들의 참여는 신라젠이 초기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전문가 기반 ‘신뢰 자본’을 구축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상장 초기 지진 부진 주가, 급등한 이유
신라젠은 2016년 12월 6일 코스닥 기술특례기업으로 상장했다. 공모가는 9,000원이었지만 상장 첫 거래일 시초가는 약 1만3,500원에 머물렀다. 기대감에 비해 주가의 초기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상장 직후 2017년 상반기까지 신라젠 주가는 1만~1만2,00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뚜렷한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했다.
분위기가 전환된 것은 2017년 하반기였다. 상반기 말부터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Pexa-Vec)’ 간암 임상 3상 착수설이 시장에 퍼지더니, 7월 실제 글로벌 임상 3상 개시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임상 3상 진입은 신약 개발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다. 임상시험 성공 시 상업화에 근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시장의 기대는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사진 = 주가 급등
이후 주가 곡선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7월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주가는 1만5,000원대에서 3만 원을 돌파했다. 하반기에 들어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져 10월에는 5만~7만 원대, 11월 들어서는 사상 최고치 구간에 진입했다. 특히 2017년 11월 21일 종가는 13만1,000원으로, 상반기 주가 대비 10배 이상 급등하며 신라젠은 단숨에 코스닥 바이오 대장주로 부상했다. 단기간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글로벌 신약주’ 기대감이 집중된 결과였다.
그러나 정점에 도달한 급등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11월 22일 장중 주가는 오전 한때 강세를 이어가다 10시 17분을 기점으로 하락 전환, 이후 매도세가 확산되며 상승 탄력이 꺾이기 시작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과도하게 높아진 밸류에이션 부담, 그리고 고점에서의 단기 차익실현 매물 출회”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경영진과 일부 대주주의 대규모 지분 매각이었다. 2017년 상반기부터 하반기 초 사이에 신라젠 임원 및 주요 주주들이 순차적으로 약 2,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 불안이 증폭됐다. 당시 한쪽에서는 단순 차익실현으로 해석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임상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인지한 리스크 관리 차원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펙사벡 3상 임상시험 중단, 주가 폭락
2017년 11월 21일, 신라젠은 종가 기준 13만1,000원을 기록하며 코스닥의 대표 성장주로 등극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10조 원을 웃돌며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이어 코스닥 시총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정점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가는 7만~10만 원대를 오가며 고점 대비 완만한 조정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3분기 실적 부진과 핵심 파이프라인 ‘펙사벡’ 임상 불확실성이 드러나면서 투자심리는 빠른 속도로 냉각됐다. 결국 2019년 8월, 펙사벡의 간암 3상 임상시험이 중단된다는 발표 직후 주가는 사흘 연속 하한가를 맞았고, 8월 6일 종가는 불과 1만5,300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2년 만에 시가총액이 공중분해된 순간이었다.
사진 = 신라젠 주가 추이 (네이버증권) 2025년 8월 28일
추락의 충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20년 5월 4일,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불거지면서 한국거래소는 상장 적격성 심사에 착수했고, 신라젠 주식은 곧바로 거래 정지됐다. 마지막 거래일 종가는 1만2,100원이었다. 거래 정지 기간은 무려 2년 5개월에 달했다. 기업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기간이었다.
2022년 10월 12일, 거래가 재개됐지만 시장의 평가는 차가웠다. 첫날 급등락 끝에 주가는 과거 고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반등의 모멘텀은 제한적이었다.
거래 재개 이후 신라젠 주가는 장기간 저가 박스권에 머물렀다. 2023년 기준 주가는 최고 6,461원, 최저 3,777원 사이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였고, 2024년부터 2025년 1분기 동안의 거래 구간은 5,582원~2,200원 수준에 머물렀다.
2025년 8월 현재 주가는 약 2,800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일시적으로 70%대 단기 급등세를 보이며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전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회복 폭은 제한적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3,900억 원으로, 전성기 대비 20분의 1 이상 축소된 상태다. 외국인 지분율은 약 2.8%로, 과거 시장의 관심도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엠투엔, 신라젠 최대주주 등극…주가 반등할까?
신라젠은 2020년 5월 4일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불거지면서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다. 같은 날 주식 거래가 정지됐으며, 이후 약 2년 5개월 동안 매매가 중단됐다. 이 기간은 단순한 거래 공백이 아니라, 지배구조와 자금 조달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전환점은 2021년 7월 15일이었다. 엠투엔이 약 6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급을 납입하며 신라젠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엠투엔은 바이오·헬스케어 포트폴리오 확장을 목표로 신라젠을 인수했고, 대표인 서홍민 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처남으로 시장 주목을 끌었다. 엠투엔은 대부업체 리드코프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투자지주 성격의 회사다. 최대주주 교체 이후 신라젠은 기존 경영진을 전면 교체하고 ‘경영 정상화’라는 기조 아래 지배구조 리스크 차단에 나섰다.
사진=엠투엔 로고
자금 조달 전략 역시 달라졌다. 2022년 거래 재개 이후 회사는 재무 건전성 회복과 R&D 재개를 위해 반복적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특히 2024년 6월에는 약 1,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핵심 파이프라인 연구와 운영자금 확보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 및 주요 주주들이 의무보유 확약을 제출하며 투자자 신뢰 회복과 지분 구조 안정화에 방점을 찍은 점이 특징이다.
한편 상장 이전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벤처 투자조합 중심의 지배구조였다는 점이 뚜렷하다. 뉴신라젠투자조합1호와 위드윈인베스트먼트가 대표적이며, 이들의 지분율은 합산 기준 약 30% 내외로 추정된다. 뉴신라젠투자조합1호의 업무집행조합원은 위드윈인베스트먼트였고, 실질적 최대주주는 전남 화순에 기반을 둔 제이제이건설(지분 약 19.7%)이었다. 제이제이건설은 지역 건설사지만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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