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이재명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전임 정부의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확장재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총지출 728조원, 올해 대비 8.1% 증가한 역대급 규모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연구개발(R&D), 복지·고용 등 미래 성장과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해 예산이 대폭 확대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늘어난 숫자 이면에는 여러 한계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먼저, AI와 R&D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다. AI 예산은 3조3천억 원에서 10조1천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R&D 예산도 역대 최대폭으로 늘었다. 정부가 미래 산업 혁신의 중심에 AI를 놓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단순히 예산 규모만 키운다고 해서 혁신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대기업이나 수도권 연구기관에 집중되는 현상, 그리고 스타트업이나 지방 중소기업 지원이 부족한 점은 현실적인 문제로 남는다. 또한 과거 R&D 예산이 대폭 늘었음에도 기대만큼 기술 상용화나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던 사례들도 있었다. 따라서 막대한 투자 만큼이나 성과 중심의 운영과 투명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복지와 고용 분야에서도 예산이 8.2% 증가하며 269조 원 규모에 이르렀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사회안전망 강화, 지역균형발전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이 늘어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1,703억 원을 투입해 월 15만 원을 지급하는 규모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한계가 명확하다. 이는 인구 감소와 지방 불균형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일시적 지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아동수당 확대 역시 지급 대상 연령이 한 살 늘어난 정도에 그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령화 대응 예산도 단순한 수치상의 증가에 머물 위험이 크다. 장기요양, 의료 인프라 확충, 노인 일자리 등 실질적 서비스 강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예산 확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보면, 정부는 총지출 증가분의 절반에 가까운 27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1,300여 개 불필요한 사업을 폐지하고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대폭 감축하는 등 재정 효율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세입 여건이 여전히 빠듯해 적자국채 발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문제다. 적자국채 규모는 110조 원에 이르고, 국가채무는 1,415조 원으로 급증하면서 GDP 대비 채무 비율은 51.6%까지 올라갔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이 사실상 지켜지기 어려움을 의미하며, 중장기 재정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확장재정의 단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 그림자 속에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방 균형발전과 교육 분야에서도 예산 확대가 눈에 띈다. 거점 국립대 육성에만 8,7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예산 확대만으로 지방 경제 활성화나 교육 경쟁력 향상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지방과 수도권 간 인구 및 경제력 격차 해소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교육 분야 역시 예산 규모뿐 아니라 교육의 질과 혁신을 담보하는 세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결국 이번 2026년 예산안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지만, 단순한 예산 규모 확대만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막대한 예산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고, 성과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AI와 R&D 투자에서는 혁신 생태계 전반에 대한 지원과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복지와 고용 예산은 단기 현금 지원을 넘어 서비스 질 개선과 사회 안전망 강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방 균형발전과 교육 분야에서는 예산 증액과 함께 구체적 실행 계획과 성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씨앗을 빌려서라도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라며 확장재정을 통한 초혁신경제 실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는 경제 대전환과 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청사진이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재정의 성장 마중물 역할’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중단기적으로 재정여건 악화가 불가피하다. 세수 부족과 국가채무 증가가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는 만큼, 재정건전성과 성과 중심의 효율적 지출 관리가 관건이다.
결국 늘어난 예산은 ‘미래 먹거리 발굴’과 ‘민생 안정’이라는 두 축에 집중된다. 성과가 입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확장보다,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재정운용이 성공 열쇠다. 예산이 제대로 쓰여 우리 경제가 체질 개선과 혁신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국민 모두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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