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⑧ 반복 속 새롭게 구성된다는 믿음에 기반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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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⑧ 반복 속 새롭게 구성된다는 믿음에 기반한 미래

문화매거진 2025-08-29 19:34: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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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⑦ 산수화에 이어 
 

▲ 모란도 십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 모란도 십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그림 속 시간은 그래서 단순한 서사적 시간, 즉 사건이 발생하고 끝나는 직선적 시간과 다르다. 시점의 전환은 순서이면서도 되풀이되고, 장면의 연속은 선형이면서도 환원 가능하다. 감상자는 그림을 걷는 동시에 그 안에서 멈추고, 다시 돌아보며, 이전의 시점을 되짚는다. 이는 두루마리 감상의 이동 시점과 유사하지만 산수화 특유의 자연성과 리듬은 시간을 더 정서적이고 구조적으로 순환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감상의 방식은 동아시아 예술에서 단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반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문화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산수화의 세계에서 인간은 중심에 있지 않다. 그림 속 자연은 인간 없이도 그 흐름을 유지하며, 감상자는 그것을 따라가고 받아들이는 존재로 설정된다. 

이 글 전반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동아시아의 미술과 문화는 시간에 대한 인식 방식 자체가 서양과 다르다. 시간은 선형적 발전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조절하고 반복하게 하는 질서의 형태다. 

제사는 죽은 자를 다시 부르고, 병풍은 정해진 순간에만 열리며, 민화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다른 의미로 등장한다. 두루마리는 시간의 흐름을 손으로 펼치게 하고, 산수화는 시간 속을 걷게 만든다. 이 모든 형식과 행위들은 ‘시간은 되돌아온다’는 사고방식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형상화한 구조다.

▲ 화조영모도, 국립중앙박물관
▲ 화조영모도, 국립중앙박물관


따라서 동아시아 미술의 시간성은 단지 감상의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와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인간이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문화적 형식이다. 반복되는 의례, 정해진 도상, 주기적 전시, 이동하는 시선이 모든 것은 단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시간 구조를 시각적으로 조직한 체계이자 문화적 실천의 틀이었다.

반복 속의 사고는 단지 미적 방식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순환적 시간관은 오늘처럼 직선적으로만 나아가려는 세계 속에서 멈추고 돌아보며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 감각을 회복하게 한다. 동양적 시간 인식은 과거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 작용하고 있으며, 미래는 반복 속에서 새롭게 구성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그렇기에 지금 다시 이 시간관을 상기하는 일은 빠르게 소모되는 현대 시간 속에서 삶의 지속성과 내면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문화적 사유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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