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3년. 대형 건설사들은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안전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 효과는 여전히 낮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9일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영향분석'에서 “산업재해 사망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지 않았고, 수사·재판 지연과 경미한 처벌이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전예산 ‘상승 곡선’, 그러나 사고 억제 효과는 제한적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2142명 → 2022~2024년 2098명으로 소폭 줄었으나 통계적 유의미성은 없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재해자 수(부상 포함)는 9만832명 → 11만5773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현대건설은 안전경영 투자액을 매년 공시한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658억원, 2023년 2399억원, 2024년 2773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도 약 2603억원을 책정했다.
대우건설도 연도별 안전보건 투자액을 밝히고 있다. 2022년 1226억원, 2023년 1448억원, 2024년 1351억원을 집행했고, 올해 예정액은 1325억원으로 파악된다.
반면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연도별 안전예산을 별도 항목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대형사 중에서도 현대건설·대우건설(그리고 DL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이 대표적으로 구체적 수치를 정기 공개한다”고 평가한다.
즉, 현대건설과 대우건설만 놓고 보더라도 최근 3년간 누적 안전투자액이 1조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기업의 지출 규모와 별개로, 현장 체감 안전도는 여전히 물음표다.
▲“수사 적체·솜방망이 판결”…법 집행의 이중 리스크
보고서는 또 다른 문제로 수사 지연과 솜방망이 판결을 지적했다. 현재 노동부가 조사 중인 사건의 63%가 적체 상태에 놓여 있으며, 전체 1252건 가운데 73%는 여전히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의 절반 이상인 57%가 처리에 6개월 넘게 걸리면서 법 집행의 속도마저 떨어지고 있다.
사법 처리 결과도 미흡했다. 지금까지 선고된 1심 판결 53건 가운데 85.7%가 집행유예에 그쳤고, 실형 선고는 드물었다. 평균 형량은 징역 1년 1개월, 벌금형 역시 평균 7280만원 수준으로,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가볍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과도한 규정이 경영진의 대응만 강화시킬 뿐 실질적 사고 예방 효과는 떨어지고 있다”며 현행 법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입법조사처는 개선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동영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조항(제3~7조)을 보다 구체화해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건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대재해 합동수사단 설치와 근로감독관 증원을 권고했다.
예방 중심의 유인책도 포함됐다. 위험성 평가를 충실히 이행한 기업에는 산업재해보험료를 차등 부과해 인센티브를 주고, 반대로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기업에는 매출이나 이익에 연동된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여기에 양형기준을 새로 마련해 재판부의 판단 기준을 통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강조한 핵심은 분명하다. 단순히 안전예산의 총량을 늘리는 것보다, 그 돈이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고 관리체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는지가 사고 예방을 가르는 열쇠라는 점이다.
건설업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고위험 작업 환경 등 본질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는 산업이다. 입법조사처는 “기업들이 수천억 원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결국 투자 확대 → 관리체계 강화 → 법 집행의 실효성 확보라는 3단계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아야만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 돈은 이미 투입됐지만, 제도와 집행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한 투자와 법의 설계가 만나야 비로소 결과가 나온다는 게 이번 분석의 결론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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