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강 대 강’ 싸움 예고된 정치권
지난 8월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강력한 개혁을 내건 정청래 후보가 당선됐다. 현역 의원 다수가 원내대표로서 이재명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박찬대 후보를 지지했으나 당원의 표심이 정반대로 엇갈리며 여야 관계와 당정 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이 생겼다.
대표적 강경파 정청래 대표 취임
정 대표는 민주당 내 대표적 강경파로 꼽힌다. 이재명 당 대표 체제에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회 측 탄핵 소추 단장을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만 4선 국회의원으로 오랜 기간 민주당에서 활동했지만 스스로 “비주류였다”고 밝힐 만큼 당내 세력은 없는 편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하며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독자적인 소통 창구를 만들어 당원들과 접촉면을 넓혀 강성 지지층의 인기를 얻어 정치적 자산을 쌓아왔다.
이로 인한 결과가 이번 당 대표 선거로 풀이된다. 당원 표심이 의원 표심을 이긴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전과 결이 다른 집권 여당의 당 대표의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선명성과 투쟁에 방점을 두고 있어서이다. 정 대표는 추석 전 검찰·언론·사법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히면서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민형배·최민희·백혜련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모두 여당 내에서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 실용주의와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통합과 협치를 내세우며 취임 직후 야당 지도부와 여러 차례 만남의 기회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야당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내란 세력 척결을 강조하며 국민의힘 해산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통상 정권 초기 첫 여당 대표는 대통령실과 발맞추며 야당과의 협치를 이끄는 역할을 요구받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정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도식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진정한 용서는 완전한 내란 세력 척결과 같은 말’이라고 하셨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을 불법 계엄에 동조한 내란 세력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당 대표 선거 후 정치권도 당과 대통령실의 ‘엇박자’에 주목한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을 두고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조국혁신당은 분명 야당”이라며 이번 사면 대상을 여와 야로 따진다면 “야 측에 해당하는 정치인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반면 정청래 대표는 SNS에 올린 글에서 “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면서 “‘광복절 특사’ 여권은 조국·최강욱 등 야권은 홍문종·정찬민도 포함”이라며 여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당정 미묘한 시각차 보여
개혁의 속도를 둘러싼 차이도 드러나고 있다. 이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정 대표의 일방통행식 속도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민감한 쟁점 사안일수록 국민에게 설명하고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며 “속도를 내되 졸속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과 직결된 쟁점 현안은 검찰 개혁으로 사실상 검찰 개혁의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다. 추석 전 검찰 개혁 완수를 공언한 정 대표를 겨냥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민석 총리도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과거 정치검찰의 문제점, 기소·수사 분리 방향은 대선 공약에도 담겼고, 정부·여당의 의지도 누차 확인됐다”면서도 “큰 방향은 정해졌지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간에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국민이 볼 때 졸속이거나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꼼꼼히 진행하는 게 좋다”고 했다. 힘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제대로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대통령과 김 총리의 속도 조절 주문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문제와 조국 전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 사면 등이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정 대표의 강성 기조도 중도층 이탈을 부른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은 정청래 대표 취임 이후 첫 상견례 자리에서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봐선 안 된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 대표에게 완급 조절을 요청한 셈이다.
‘반탄’ 지도부 구성된 국민의힘
한편 대선 패배 이후 극심한 내홍을 겪은 국민의힘이 차기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 분열을 일단락하고 혁신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반탄(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탄핵 찬성)’ 안철수·조경태 후보가 출마해 당내 주자들이 상대 후보를 향해 ‘나가서 새 당을 차리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조경태 후보는 YTN 라디오에서 장동혁 후보를 겨냥해 “나가서 극우 정당을 만들든, 다른 살림을 차리든 하는 게 낫다”고 전했고, 안철수 후보도 “계엄을 옹호하는 분은 밖에 나가서 같은 의견을 가진 분과 당을 차리고 활동하는 게 훨씬 좋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장 후보는 “당원들이 나를 당 대표로 뽑아주면 조경태 의원은 내란 동조 세력이 있는 당에 남을 것이냐”고 반문하며 맞불을 놨다. ‘혁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전당대회 정작 ‘찬탄’과 ‘반탄’ 간 분열로 ‘분당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번 전당대회의 스포트라이트가 네 명의 후보가 아닌 ‘전한길’이라는 인물에 쏠린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친윤(친윤석열)’ 유튜버 전한길 씨는 지난 8월 8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찬탄파’ 후보들을 향해 “배신자”를 외치며 비난과 야유를 선동하는 등 전당대회 행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당 대표·최고위원·청년 최고위원 후보 상당수가 전 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면접’에 경쟁적으로 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며 윤 전 대통령 복권을 주장한 전 씨의 ‘윤 어게인’ 검증에 후보들이 호응하며 당 극우화 기류가 강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당 지도부는 전 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금지하고 징계 절차에 착수했으나 경징계(경고)에 그치며 절연하지 못했다. 징계 추진에 반발한 전 씨가 당사를 방문해 목소리를 높이고 김문수 후보를 만나는 등 존재감만 두드러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무거운 내부 분위기 속에 특검의 수사 압박으로 이중고도 겪고 있다. 당내 주요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지도부 교체가 ‘쇄신’보다는 ‘방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실제 김건희 특검이 전당대회 기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에 나서자 당 대표 후보들이 농성과 시위에 돌입하는 양상도 펼쳐졌다. 김문수 후보는 그날 밤부터 당사 로비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고, 장동혁 후보는 특검과 법원에 이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시위를 펼쳤다. 안철수 후보는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조국·윤미향 사면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했다. 이는 당원들에게 대여 투쟁력을 과시하는 행보로 평가됐다.
이러한 가운데 장동혁 대표 취임으로 ‘반탄’ 지도부가 구성되게 되면서 가뜩이나 경색된 여야 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성 지지층이 힘을 실어준 만큼 취임 직후 대여 강경 투쟁 노선을 통해 체제를 공고히 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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