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앙꼬
"앙꼬라고 하면 안 돼. 일본말이야, 알았지?"
그 강박이 원인일 테다.
"공수처를 뺀 검찰 개혁은 '앙금 없는 찐빵'과 같습니다"
예전 여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이상하다.
"당신, 나한테 아직도 '마음의 앙금'이 남아있는 모양이구려."
이런 게 제대로 된 '앙금'의 예다.
앙금의 제1 뜻은 '녹말 따위의 아주 잘고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이다. 이걸 의식한 모양인데, 이걸 빵 안에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앙금은 곧 침전물/찌꺼기다.
제2 의미는 화학 실험 같은 데서 나오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생성 물질을 의미한다. 검찰 개혁의 핵심/내용/알짬을 뜻할 요량이었다면, 그리고 그걸 찐빵에 대입하고자 한다면, 그 답은 '팥소'여야 한다.
팥을 삶아서 으깨거나 갈아서 만든 것이다.
아니면 '팥앙금'이라고 확실히 구체화해야 한다.
삶은 팥을 으깨어 물/설탕/물엿 따위를 넣고 졸인 것. 찐빵의 속에 들어가 맛을 내는 주인공이다.
'앙꼬'가 두려웠다면 확실히 대처했어야지 고작 뒤의 한 글자 바꾸면 뭐하나. 앙꼬 대신에 앙금? 앙꼬의 대체어는 팥소다. 기억하자.
◇ 토렴
'토렴'이란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이란 뜻이다.
어릴 적, 아니 요즘도 가끔 시장통에서 국밥을 먹게 되면 살뜰한 주인들은 꼭 토렴해준다.
손가락이 벌겋게 되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성'과 '성의'라는 가치를 담보해 줄 것이라는 믿음 어름일 것이다.
말하기가 그렇다. 자신의 말하기 실력을 유지하려면 '뜨거운 국물'이라는 도전을 마다하면 안 된다.
발음, 읽기, 말하기는 자극과 추동이 없으면 퇴보한다. 쉬 식어버리는 국밥처럼 말이다.
어려운 발음과 맞닥뜨리면 자연스럽게 소리 낼 때까지 입을 놀려 버릇해야 한다. 단 즐거운 마음으로.
멋지고 근사한 어구, 문장을 접하면 눈으로만 지나치지 말고 꼭 음독(音讀)해 볼 일이다. 나름대로 감정을 담고 어조도 신경 쓰면서 말이다.
늘 남들 앞에 서서 말하는 '나'를 상상하자. 공적인 말하기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켜 보는 게 중요하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것이다.
펄펄 끓는 들통의 국물. 그 두려움은 토렴이라는 부단한 프로세스라야 극복된다.
유창하고 근사한 말하기는 발음, 읽기의 단련이라는 버팀목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 실랑이와 승강이
여기서는 '승강이'가 더 정확한 말이다.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뜻한다.
'실랑이'는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이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피해를 주는 게 다르다.
"빚쟁이들한테 하도 실랑이를 당해 어머니가 지쳐 보인다." 이런 게 예문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랑이'의 제2 의미로 '승강이' 뜻을 추가해 틀린 건 아니다.
◇ 보조동사 쓰기
많이 틀린다.
'바라본다/바라 본다'가 맞는다. 뒤의 '본다(보다)'는 보조동사라고 한다.
어떤 행동을 시험 삼아서 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 다음에 '보다' 구성으로 쓰인다.
'먹어 보다/입어 보다/들어 보다'
이건 붙여 써도 된다.
'먹어보다/입어보다/들어보다'
'본다'는 '보다'의 현재형 활용이다. '바라'에 'ㅓ'가 붙으면 '바라어'인데 이게 '바래'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바라'다. 그래서 '바라본다'다.
'달래본다' 때문에 종종 '바래본다'로 헛갈리는데 이건 동사 원형이 '달래다'다. 달래 + 어 = 달래, 그래서 '달래본다'다.
'해보다'도 있지만, 이건 원래부터 한 단어다.
더불어 "그 물건 찾길 바라"가 역시 맞는다. '찾길 바래'가 아니다.
끝으로 모든 '바람'은 '바람'이다. '바램'은 없다. 노사연의 바램은 미안하지만, 맞춤법에는 어긋난다.
◇ 딛다/디디다
'발 딛을' 틈이 없다?
'디디다/딛다'는 복수 표준이다. 그러나 원형은 '디디다'다. 따라서 '딛다'는 한계가 있다. 뒤에 모음이 오면 '딛'을 쓸 수 없다.
'디뎌/디디면/디딜'이 돼야지 '딛어/딛으면/딛을'은 불가하다.
'딛고/딛지' 등은 가능하다. 모음이 아니라 그렇다.
발 딛을(X) 발 디딜(O).
'가지다/갖다'도 마찬가지다. '갖어/갖아/갖으면'은 틀린다. 원형 '가지다'에 기반해 '가져/가지면'으로 활용해야 한다.
◇ '여'의 발음
'50여 명'의 발음. [쉰여 명/쉬녀명]으로 자주 틀린다. 여(餘)는 그 수를 넘는다는 접미사다. 한자라는 게 힌트다.
따라서 앞의 숫자도 한자식(오십)으로 읽어야 자연스럽다.
고유어 식(쉰)이 아니다. [오시벼명]으로 해야 한다. 간혹 [오심녀명]을 보게 되는데 이건 'ㄴ 첨가' 대상이 아니다. 그냥 연음이다.
◇ 환골탈태
원뜻이 '가죽을 벗기는 심정'인데 좀 섬뜩한 것 아닌가?
이럴 때 고사성어가 필요하다. 고사성어라면 질색하는 이도 있고, 반대로 틈만 나면 쓰는 부류도 상존하나 압축미가 미덕이다.
뜻을 함축하면서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사자성어는 효과적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이 경우 걸맞다.
겉모양은 물론 뼈까지 바꾼다는 의미니, 의도한 바와 일치하고 좋지 않은가.
'환골탈퇴?', 절대 아니다!
또 하나 짚을 것은 '가죽의 일반화' 현상이다.
요즘 사람들이 가죽만 알지 '거죽'을 잘 모른다. 가죽은 동물을 전제로 하고, 거죽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다. '물체 일반의 겉'을 거죽이라 하며, 옷/이불의 겉도 일컫는다.
예) 늦기 전에 어서 거죽부터 속까지 일신(一新)한다는 자세로 나서라.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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