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환자의 과중한 의료비를 사회가 분담하기 위해 마련된 본인부담상한제 환급이 본격 시행에 들어섰지만, 실손보험과의 중첩으로 일부 환자에게는 ‘혜택’이 곧바로 ‘환수 의무’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법원 판례가 이미 실손보험금을 수령한 가입자의 경우 환급액을 보험사에 반환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제도의 선의(善意)가 도리어 소비자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적보험과 민간보험 간 정산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정책적 과제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날부터 총 2조4000억원 규모의 본인부담상한제 환급 절차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환자가 1년 동안 부담한 의료비가 소득 수준별 상한액을 넘을 경우 초과분을 돌려주는 구조로, 고액 진료를 받은 저소득층과 고령층 환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환급 대상 인원은 약 187만명에 달해 국민 다수가 직·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두고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국가가 나눠진다”는 사회 안전망의 가치를 구현하는 대표 사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환급 사례도 정책 효과를 방증한다. 암 치료를 받아 높은 의료비를 지출했던 한 환자는 지난해 본인부담금만 600만원에 달했지만, 상한제 덕분에 절반가량인 300만원을 환급받았다. 항암제를 장기간 투여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해당 제도는 사실상 경제적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장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환급 과정이 실손보험과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논쟁을 낳고 있다. 본래의 취지가 소비자 부담 완화였던 만큼, 민간보험과의 충돌로 혼란만 커지는 구조는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손 가입자, 환급→환수로 이어지는 아이러니
실손의료보험은 환자가 실제 지출한 금액만을 보장하는 구조다. 따라서 환자가 낸 본인부담금 중 일부가 건강보험공단 환급으로 되돌아오면, 이미 지급된 실손보험금 가운데 일부는 사실상 ‘과잉 지급’으로 간주된다.
최근 대법원 판례 역시 이 논리를 받아들였다. 판결에서 “본인부담상한제 환급액은 환자가 실제 부담한 손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실손보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사례를 보면 단순하지만 역설적이다. 가령 한 환자가 병원비로 500만원을 지출하고, 이 중 400만원을 실손보험으로 보장받았다면 해당 환자의 실제 부담액은 100만원이다. 그런데 건보공단에서 150만원이 환급된다면, 결과적으로 환자의 부담은 –50만 원, 즉 이익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 초과분을 보험사가 환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전문가도 보험의 기초 원리에 비춰 환수 자체는 무리가 없다고 본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손해보험은 실제 손해만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환급으로 이익이 발생했다면 보험사가 이를 정산하는 건 타당하다”며 “이를 환수하지 않으면 손해율이 상승해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계약자에게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절차적 비효율, 되레 소비자 부담 키워
문제는 절차다. 건보공단은 환급금만 지급하고, 환수 여부는 환자가 보험사에 신고하고 서류를 제출해야만 정산된다. 제도 간 시스템 연계가 없는 탓에 환자들이 환급과 환수 과정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환자가 공단에서 환급금을 받고도, 다시 보험사에 직접 신고하고 반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다”며 “특히 고령층 환자에게는 절차가 큰 장벽으로 작용해 상한제의 취지 자체가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효율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기관 간 정산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최미수 교수는 “환수 원칙은 합리적이지만, 지금처럼 환자가 건보공단과 보험사 사이에서 절차를 일일이 밟는 건 제도의 비효율”이라며 “양 기관이 시스템을 연계해 자동 정산을 하면, 소비자는 최종 환급 차액만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회장은 보다 근본적인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환급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마련된 사회안전망인데, 실손 가입자만 환급액을 다시 내야 하는 구조라면 결과적으로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건강보험료도 내고, 실손보험료도 내는데 정작 환급 혜택은 줄어들고 절차적 불편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이는 제도의 취지와 정반대다. 보험사 역시 환수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보험료 감면이나 자동 공제 방식 등 소비자를 배려하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당국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적보험과 민간보험 간 정산 구조를 점검해, 환급 제도의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완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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