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가 전방위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앞두고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정제마진 축소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정유업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석유화학 분야는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양 산업이 납사(나프타)를 매개로 긴밀히 연결된 만큼 이번 위기는 단순 업황 침체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 신호탄이란 평가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분기 연결 기준 4176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이로써 전년 동기 대비 손실 폭이 800% 이상 크게 확대됐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석유사업에서만 4663억원 규모 손실이 났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유가 하락, 정제마진 축소가 겹친 결과다.
다만 3분기 이후 일부 지표에선 개선 기대감도 엿보인다. 영국 에너지기업 BP가 집계한 글로벌 정제마진 지표(RIM)는 2분기 배럴당 11.9달러에서 3분기 들어 14.7달러 수준으로 상향됐다.
국제 유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5년 WTI 연평균 가격을 63.58달러로 예상했다. 정유업계는 원가 부담이 줄고 관세 리스크 완화, 배터리 사업 확대 효과 등이 맞물리면 하반기 수익성이 일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계 정제마진 근간을 흔드는 최대 요인은 석유화학 수요 감소다.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납사 크래킹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전환되자 원료 구매량 자체를 줄이고 있다.
중국발(發) 대규모 증설이 이어지며 시장 가격이 급락한 것도 악재로 꼽힌다. 정유사가 납사를 생산해도 수요처가 마땅치 않아 오히려 손실이 늘어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납사 시장 불안정이 정유와 석화 양쪽 업계 모두를 압박하는 이중고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악순환 속에서 지난 20일 정부는 국내 10대 석유화학사와 나프타 분해 설비 감축에 합의하는 고강도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감축 규모는 연간 약 270만~370만톤으로 전체 설비 중 최대 25%에 해당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9년 이후 최대 폭 구조조정이다.
바닥을 치다시피 한 부진은 여러 실적 수치로 확인된다. LG화학 석화부문은 2분기 영업손실 90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롯데케미칼은 2449억원 적자를 냈다. 여천NCC는 2분기 영업손실 1069억원, 상반기 누적 손실 1566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석유화학 수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한 217억달러에 그쳤다. 업계 전반 수익 기반이 붕괴된 상황으로 해석된다.
업계 ‘칼바람’은 이미 시작됐다. 석화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7일 대산공장과 여수공장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대상 희망퇴직 의사 확인 절차를 시작했다. 이는 생산·사무직을 가리지 않고 58세 이상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 신청 시 정년까지 잔여기간 해당 급여 보전과 아울러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을 대상으로 하나 향후 설비 매각, 업체 간 통합 가능성을 고려하면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기업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병행한다. 구조조정 방식에는 설비 영구 폐기와 일시 가동 중단, 고부가 제품 전환 등이 포함된다. 또 산업단지별 효율화, 친환경·저탄소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도 병행한다. 업계는 이로써 단기 손실 해결을 넘어 중장기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정유와 석유화학은 원료·제품 라인을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정유사가 납사 생산을 줄이면 석유화학사 가동률이 떨어지고 석유화학 수요가 부진하면 정유사 정제마진 수익이 흔들린다. 사실상 양 부문이 따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해 포트폴리오를 동시 다변화하지 않으면 회복이 어렵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저가 공세, 글로벌 과잉 공급, 탈탄소 압력 등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과 저탄소 전환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더 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향후 2~3년간 정유·석화업계 혁신이 국내 산업 경쟁력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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