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의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인간 아닌 존재들의 이야기
"미래 낙관하지 않지만, 밝은 곳 향해 나아가며 쓴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우리가 가진 감각과 몸, 인지와 같은 것들은 우리 한계를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번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면서 오히려 한계가 가능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SF(과학소설)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소설가 김초엽(32)이 세 번째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로 돌아왔다.
소설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은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안드로이드나 외계생명체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조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한다.
김초엽은 27일 연합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비인간 존재는 지구와 세계를 인간과 함께 구성하는데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기에 비인간 존재를 이해하려 할 때조차 의인화의 함정에 빠진다"고 짚었다.
이어 "소설에 등장하는 비인간 존재들은 인간 관점의 한계를 이야기로나마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며 "그렇게라도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표제작은 선천적으로 한 몸에 두 자아를 갖고 태어나는 외계 종족 '셀븐인' 샐리의 이야기다. 샐리는 여성의 몸에 여성인 라임, 남성인 레몬 두 자아가 깃들어 있다. 두 자아는 모두 류경아라는 한 인물과 연인 사이가 되고 서로 질투한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인공 피부를 이식한 안드로이드 수브다니가 피부를 다시 금속으로 교체하는 이야기다. 피부 교체 시술을 앞두고 수브다니가 한 유명 예술가와 연인 사이이자 창작을 함께한 동료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어난다.
이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모습은 인간인 독자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긴다. 이야기 초반부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감정이 다소 기괴하게 느껴지다가도 후반으로 갈수록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김초엽은 "우리는 감각의 범위 밖을 느낄 수 없고, 하나의 몸에 평생 갇혀 살아가며 때로는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맞닥뜨린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연결을 갈망하고, 그렇게 애쓰는 과정에서 인간만의 여러 고유한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며 "수록작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생각하며 쓴 이야기들"이라고 설명했다.
김초엽은 꾸준히 앤솔러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과 소통했으나 소설집을 펴낸 것은 2021년 '방금 떠나온 세계'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4년 동안 인공지능(AI)의 비약적인 발전과 기후 위기 심화 등 인류를 둘러싼 환경은 큰 변화를 겪었다.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곧 직업인 SF 작가로서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묻자, 김초엽은 "개인으로서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쓸 때는 비관적 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이야기와 인물들에 담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절대적인 가치도 본질도 없는 사회에서는 불확실성을 존재의 근원 조건으로 끌어안고 세계와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가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통해 그 어려운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과 가작을 모두 받으며 데뷔한 김초엽은 내놓는 작품마다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SF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다 비중화권 작가의 소설로는 최초로 중국 성운상 번역작품 부문 금상, 은하상 최고 인기 외국작가상을 받으며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이외에도 김초엽은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행성어 서점', 중편소설 '므레모사',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파견자들' 등을 펴내 오늘의작가상, 젊은작가상, 한국출판문화상 등을 받았다.
래빗홀. 384쪽.
jaeh@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