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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최근 출간한 자신의 첫 책 ‘호의에 대하여’에서 법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쓴 글이다. 그는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하여 시민들과 소통하였고 책을 읽었다”며 “공자의 말씀처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망에 빠지기 쉽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또 다른 글에서 문 전 대행은 “판사란 타인의 인생에, 특히 극적인 순간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며 “분쟁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생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없다면 자칫 그들 인생에 커다란 짐을 지우는 오판을 할지도 모른다”고도 전한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판사란 직업이 두렵다”고 털어놓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으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의 속내가 드러나는 문장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문 전 대행은 ‘좋은 판결’에 대해선 확고한 생각을 보여준다. 그는 “‘좋은 판결이란 식물처럼 자란다’ 할 수 있겠다”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여론의 압력을 견뎌내되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강할수록, 사실성과 타당성을 모두 갖출수록 좋은 판결이라 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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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는 문 전 대행이 1998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작성해 2006년 9월부터 개인 블로그에 올린 1500여 편의 글 줄 120편을 일부 수정하고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 정리한 책이다. 문 전 대행은 ‘여는 말’에서 “이제 무직이 되어 여유가 생겼으므로 인생과 함께 글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책을 내게 된 이유를 밝힌다.
문 전 대행은 소문난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문 전 대행은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초임 판사 시절,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계약서도 없이 왜 거액의 거래를 하는지, 사건과 사람을 이해하기엔 경험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했고 간접경험을 넓히는 방편으로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행은 “혼돈의 시기에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책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문 전 대행의 일상에 대한 생각, 독서 일기, 사법부 게시판에 올린 글 등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산책길과 등산길에서 발견한 사람을 닮은 나무,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읽은 책,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하게 만든 선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 등 문 전 대행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문 전 대행은 “평생 책 한 권 내는 것을 꿈꾸었던 저에게는 이 책의 발간이 큰 의미가 있음이 명백하지만, 여러분께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 책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던 어느 판사의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호의에 대하여’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재판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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