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53] 호작도,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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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53] 호작도,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매거진 2025-08-27 10:32: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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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작도 / 사진: 위키피디아
▲ 호작도 / 사진: 위키피디아


[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전통 민화, 호작도(虎鵲圖)를 떠올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주인공들은 괴물과 맞서 싸우며 늘 두려움과 희망 사이를 오간다. 무섭고 위압적인 괴물은 우리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동료들과의 유머, 따뜻한 관계, 희생의 순간 속에서는 희망이 피어난다. 이것은 바로 호작도의 세계와도 닮아있다.

호작도는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등장하는 민화다. 호랑이는 산의 왕으로, 힘과 권위를 상징하지만, 민화 속에서는 종종 우스꽝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게 그려진다. 반면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늘 희망과 반가움을 상징했다. 이렇게 정반대의 존재가 한 화면에 놓임으로써 호작도는 삶의 양면을 보여준다. 무서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 권위를 풍자하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민중의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호작도가 같은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다. 괴물의 과장된 형상은 민화 속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닮았다. 단순히 공포를 주기보다는 그 속에 풍자와 해학이 섞여 있다. 또한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를 북돋우며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서사는 까치의 울음처럼 따뜻하다. 두려움과 희망은 언제나 함께 있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을 전통과 현대 모두가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가며 나는 내 안에도 늘 ‘호랑이’와 ‘까치’가 공존한다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호랑이처럼 크고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작은 까치들이 있다. 내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판다곰 ‘몽다’, 거북이 ‘거복이’, 그리고 세잎클로버와 무지개 같은 상징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까치처럼 내 마음에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며, 관객들에게도 그 울림을 나누고 싶게 만든다. 나는 종종 작업을 하며 ‘나만의 호작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호랑이와 까치가 한 화면에 공존하듯, 나의 작품도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삶은 결코 한 가지 표정만을 짓지 않는다. 무겁고 두려운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기쁨과 따뜻한 만남이 그 옆에 나란히 놓인다. 

예술의 역할은 아마도 그 균형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호작도를 바라보며 우리는 과거의 백성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콘텐츠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이유도 같다. 인간은 언제나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며,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전통의 상징과 현대의 서사가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나에게 늘 놀라움과 위로를 준다. 

나는 앞으로도 내 작업 속에서 작은 까치의 울음을 불러내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찾아가 “두려워하지 마, 좋은 일이 올 거야”라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다. 호작도는 단순히 옛 그림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상징일 것이다. 전통은 이렇게 현대와 맞닿으며, 우리의 삶과 예술 속에서 계속 새롭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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