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서울 시내 한 카페. 프리랜서를 준비 중인 이모(31)씨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직장 생활을 떠올렸다.
“첫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더 좋은 회사로 옮기면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직할수록 더 나빠졌죠. 이제는 직장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씨처럼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된 사람은 전국에 약 40만 명. 이 중 70% 넘게는 이미 한 번 이상 직장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길 주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직장’ 때문이다.
“겨울엔 롱패딩 입고 손난로 들고 일했다”
서울 마곡의 한 중소기업에서 3년간 근무했던 서모(33)씨는 겨울이면 사무실에서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난로 없이는 업무가 어려웠다. 화장실은 낡고, 따뜻한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제 열정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며 그냥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윤모(27)씨는 더 극단적인 경험을 했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악취가 진동했고,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는 방광염까지 겪었다.
“특히 생리 기간에는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 기억이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직수관이 아닌 물통을 교체하는 정수기조차 눈치를 줬던 회사도 있었다.
“직급별로 마실 수 있는 물 양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김모, 34세)
‘쉬었음’ 뒤엔 첫 직장의 상처
단순히 일자리 부족이 아니다. 이미 일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다시 취업을 망설이는 이유는 ‘첫 직장의 상처’ 때문이다.
“대표의 인격 모독성 폭언을 버텨보려 했지만 내상이 깊었어요. 야근 수당 미지급 같은 건 흔한 일이었고, 5인 이하 사업장이라 법의 보호도 받기 어려웠죠.”(김모, 32세)
윤모(30)씨는 “아직도 감정 쓰레기통처럼 부하 직원에게 폭언을 퍼붓는 상사가 많다”며 “네가 참으라는 조직문화 속에서 직장 자체가 싫어졌다”고 털어놨다.
청년단체 ‘니트생활자’ 전성신 대표는 “다시 취업을 주저하는 건 실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난번 나쁜 경험이 반복될까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230만원은 돼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
대학내일이 전국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최소 조건은 △연봉 2823만 원 △통근시간 편도 63분 △주 3회 이하 추가 근무였다.
그러나 청년들이 더 강조한 건 ‘조건표의 숫자’보다 ‘일터의 상식’이었다.
“야근이 싫은 게 아니에요. 필요한 일이고 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 하는 일도 없는데 토요일 격주 출근, 밤 10시까지 강제 잔업이 일상이었어요. 수당은커녕 식대조차 없었죠.”(최모, 29세)
김모(28)씨는 “서울에서 월세 내고 생활비를 쓰고도 100만 원은 저축하고 싶다”며 “실수령 230만 원은 돼야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했다.
기업도 높아진 눈높이...“일자리 하한선, 제도화해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는 39개뿐이다. 반대로 기업 10곳 중 8곳은 “지원자 중 적합 인원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에 실패했다.
취업 준비생 A씨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다 갖춰도 면접조차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언론은 청년 탓만 하지만 사실 기업의 눈높이도 높다”고 했다.
결국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환경이다.
지방의 한 식품기업 인사담당자는 “청년을 채용해도 3~6개월이면 대부분 나간다”며 “셔틀버스나 구내식당을 제공할 여력은 없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건 바로 그런 기본 복지”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하한선’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안전한 근로 환경, 합리적 근로시간, 기본 복지제도를 보장하는 최소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청년이 견뎌야 하는 직장이 아니라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 노동시장 복귀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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