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병자호란은 조선에게 참담한 굴욕이었지만, 동시에 항쟁과 자주정신을 되새긴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역사문화관은 지난 22일 개막한 기획전 ‘침묵 속의 무장, 남한산성 2.0’을 통해 자주와 독립을 향한 결의를 담아 재정비된 남한산성의 역사적 전환을 조명한다.
전시에선 ‘치욕에서 결의로’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프롤로그 3부, 에필로그로 구성되며 ‘어제 병학지남(남한산성 개원사판)’, ‘현절사 숙종대왕 어제 편액’ 등 총 30점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프롤로그 ‘치욕의 겨울을 견디며, 수호의 칼을 벼리다’에서는 미디어아트 영상을 통해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의 항전과 인조의 항복, 그리고 그 치욕의 기억을 환기한다.
이어지는 1부 ‘난공불락의 산성을 완성하다’는 병자호란 이후 성곽 증축과 방어체계 보강을 통해 남한산성이 ‘함락되지 않는 성’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다뤘다. 조선은 다시는 같은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 철저한 준비로 산성을 무장시켰고, 이는 곧 남한산성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전시에선 봉암성 출토 전돌, 남한산성 축성 공로첩과 교지 등 실물 유물과 멀티미디어 자료, 촉각 체험물 등을 통해 이 같은 과정의 이해를 돕는다.
2부 ‘용호龍虎, 호방하고 용맹하게 일어나’에서는 수어청·수어사 중심의 군사 지휘 체계의 정비와 정조 대 군사 개혁을 다룬다. 특히 정조가 자주 국방을 위해 직접 간행을 지시한 병법서 ‘어제병학지남’(남한산성 개원사판)이 눈길을 끈다. 정조는 자주적인 군사를 기르기 위한 방편으로 병법서 ‘병학지남’의 수정 간행을 지시했다. 이 초간본은 남한산성에서 간행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으며, 군사 배치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한자 본문에 한글 해설을 덧붙여 병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는 자주 국방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한산성이 ‘읽고 훈련하는 군사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영조가 수어사 김시묵에게 내린 ‘밀부 유서’와 좌승당 편액의 복원 가능성을 보여주는 ‘좌승당기 편액 탁본첩’ 등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 처음 공개돼 의미를 더한다.
3부 ‘항쟁을 기리는 장소가 되다’는 남한산성이 단순한 방어 거점을 넘어 항전 정신을 기리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며 순절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를 기리는 현절사와 관련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숙종이 사액한 현절사 편액, 윤집 후손이 정리한 ‘가세구문’, 오달제가 심양으로 호송되던 길에 쓴 편지가 수록된 ‘추담집’ 등이 포함되며 영조가 이들을 기리기 위해 실시한 충량과(忠良科) 과거시험도 소개된다.
에필로그 ‘자주·독립의 수호 공간으로 남다’에선 19세기 말 항일 의병의 집결지로 기능하며 저항의 성지로 자리한 남한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다. 무장은 단순한 무력 준비가 아니라 기억과 사상의 재건이라는 메시지를 만날 수 있다.
이종희 남한산성역사문화관 팀장은 “침묵 속에서 무장한 성곽 도시 남한산성을 통해 관람객들이 과거의 항전 정신을 오늘날의 자주 의식으로 되새기는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7월12일까지 이어진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