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법원 판결로 채권양도에서 횡령죄 성립을 위해서는 단순한 계약 위반을 넘어 특별한 신임관계 존재가 엄격히 입증돼야 한다는 기준이 명확해졌다. 신탁사업 관련 분쟁에서 형사처벌과 민사적 해결 방안 사이의 경계도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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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5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피고인들은 부동산 개발 회사들을 설립했다. 전남 무안군 토지를 취득한 후 한국토지신탁과 계약을 맺어 오피스텔 분양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신탁계약에서 핵심 약정이 있었다. “부가가치세 환급금은 신탁회사(한국토지신탁)에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부가가치세는 사업 과정에서 미리 납부한 세금을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다.
문제는 피고인들이 이 약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8년 부가가치세 환급금 총 50억여원을 신탁회사 계좌가 아닌 자신들 회사 계좌로 받아 사용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계약상 신탁회사에 넘겨야 할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며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신탁계약상 부가가치세 환급금 양도조항이 유효하며, 피고인들이 채권양도인으로서 양수인인 피해 회사를 위해 환급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부가가치세법 개정으로 납세의무자가 변경됐다고 해서 양도약정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A씨에게 징역 3년, B·C씨에게 각 징역 2년 6월, D·E씨에게 각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D·E씨에는 3년간 집행유예를 인정했다.
2심은 1심 판결을 일부 파기했다. 2심 재판부는 채권양도에서 횡령죄 성립에 관한 종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변경되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보관에 관한 신임관계가 존재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 피고인들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했다.
신탁관계의 특성, 토지신탁약정 및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의 내용, 양도조항의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2심의 판단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지적하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부가가치세법상 환급금 귀속 원칙을 명확히 했다. 구 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8항에 따라 2018년 1월 1일 이후 신탁재산을 수탁자 명의로 매매하는 경우 사업자 및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원칙적으로 위탁자이며,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도 위탁자에게 귀속된다고 밝혔다.
채권양도에서 횡령죄 성립 요건도 재확인했다. 계약으로 권리를 넘긴 측이 법적 절차를 완료하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닌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을 피해 회사에 양도한 후 세무서로부터 환급금을 수령한 부분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를 넘어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보관에 관한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신탁계약 구조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귀속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신중한 법리 판단을 통해 형사책임 판단 기준을 재검토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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