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국회가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자동차 업계 전반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의 노사 갈등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되면서 교섭 부담이 급증할 수 있고, 외국계 기업의 투자 환경 악화나 국내 고용 감소 가능성까지 지적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표결에 부쳐 재적의원 186명 중 183명이 찬성해 가결했다. 개정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6개월 뒤 시행된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넓히고, 경영상 결정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거나 단체협약이 명백히 위반된 경우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쟁의권은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협력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완성차 업체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1차 협력사만 370여 곳,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5000곳이 넘는다. 이미 현대차와 기아의 임단협만으로도 수개월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수천 개 협력사 노조까지 원청이 관여해야 한다면 경영 리스크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사 교섭 창구가 사실상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셈”이라며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책임 면제 조항도 논란이다. 개정안은 ‘부득이한 손해’에 대해선 배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했다. 노조 파업으로 발생한 피해를 기업이 사실상 회복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최근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 소송 일부를 취하한 것도 이러한 제도 변화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 기업들의 한국 투자 매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완성차 업체의 경우,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사업성 평가에 법·제도 리스크가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발 관세 부담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은 노동 환경 변화까지 더해질 경우 투자 위축이나 생산 거점 재검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미 미국발 관세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GM은 이번 법 개정으로 이중고에 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노란봉투법 간담회에서 "본사로부터 사업장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관세 여파에도 철수설을 일축했던 한국GM이, 이번에는 철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내 경직된 생산 환경이 투자 유지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GM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대부분 외국계 제조기업들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며 “노사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제도적 리스크까지 더해진다면 철수는 물론, 앞으로 한국에 신규 진출하려는 기업도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국내 고용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리스크를 줄이려는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 설비를 옮기거나 로봇·자동화 투자를 늘릴 경우, 결국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하청에 대한 본청 책임 소재를 강화했기 때문에 3,4차로 이뤄지는 하청구조를 가진 제조업 같은 경우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 역시 경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마저도 AI·로봇이 차지하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은 1차·2차·3차 밴더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가 지배적인데, 이번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이들 기업이 모두 원청을 상대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원청의 협상팀은 사실상 연중 내내 노조와 교섭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산이 중단될 경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그마저도 제약이 커지고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이런 불확실성 탓에 연간 목표 생산량조차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