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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유화적인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전 교회 수사와 주한미군 기지 압수수색을 언급하며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두 정상은 공개 회담에서 서로를 치켜세우며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
◇회담 무산 가능성에서 나이스가이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당일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Purge)이나 혁명(Revolution)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겠는가”라고 언급해 논란을 불렀다.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2시간 40분 앞두고 올라온 이 글에 회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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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 자리에서 기자들로부터 질의를 받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한국 새 정부에 의한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들은 심지어 우리(미군) 군사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확인해보겠다. 알다시피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몇 시간 후에 이곳에 온다”며 “그를 만나기를 기대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전 대통령 및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검팀이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통일교, 오산공군기지를 압수수색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날선 발언과 달리 막상 백악관에서 마주한 두 정상은 긴장을 드러내기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지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 우리는 당신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질문에 “오해일 것”이라며 입장을 누그러뜨렸고, 이 대통령은 “우리는 미군기지를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기지 내 한국군 부대를 조사한 것.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해드리겠다”고 답했다.
BBC는 “이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니아 대통령)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처럼 공개적인 긴장 국면을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며 “트럼프가 한국 정부를 향해 매우 중대한 혐의를 SNS에 공개적으로 제기한 뒤, 불과 몇 시간 후 ‘오해일 것’이라며 가볍게 넘기는 모습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및 JD 밴스 부통령 등과 설전을 벌였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회담 도중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에서 백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봉변을 당했다.
이 대통령은 “오벌오피스가 정말 밝고 아름답다. 마치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듯하다”며 백악관 인테리어를 칭찬하며 말문을 열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중재 노력과 다우존스 지수 상승에 대해 언급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트럼프 타워를 세우고, 김정은 위원장과 골프 라운드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농담을 던져 트럼프 대통령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역·안보 쟁점 무난하게 넘어가…“연내 김정은 만나고파”
무역과 안보 분야의 주요 현안은 예상보다 차분히 정리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무역협정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지만, 회담 후에는 “우리는 원칙을 지켰고, 한국도 자신들이 합의한 것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합의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한 세부 이행을 촉구해왔다. 이 대통령 역시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일부 워싱턴 인사들이 7월에 체결한 관세합의가 한국에 지나치게 유리하다고 본다”며 “일방적인 재협상 시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회담 이후 열린 한미 비즈니스 포럼에서 필라델피아 한화 조선소 투자, 대한항공의 보잉기 구매 등을 포함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민간 투자 계획을 직접 소개하며 경제 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7일 한화그룹이 소유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직접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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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의 쟁점으로 인식됐던 ‘전략적 유연성’, 즉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나 일부 감축 요구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한국과 친구”라며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에 4만명이 넘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 주한미군 규모는 2만 8500명이다. 그는 또 “미국이 주둔하는 군사기지가 있는 땅을 임대가 아니라 소유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기지를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주목된 또 하나의 지점은 북미 관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올해 안에 만나고 싶다”고 직접 언급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에 적극 호응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한 세계사적 평화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나고 싶다”며 이 대통령의 구상에 적극 호응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외교 복원을 희망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됐던 이 대통령에 대한 ‘친중’ 논란 역시 일부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자신을 중국으로 초청했다고 주장하며 이 대통령에게 동행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력을 이어가면서도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는 균형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방미 일정 중에도 베이징에 특사단을 보내 한중 관계 정상화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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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이 대통령)는 매우 좋은 남자(guy)이며 매우 좋은 한국 대표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으로, 양국 정상이 다시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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