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30] '아웃사이더 유대인'이 주류로 급부상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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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기30] '아웃사이더 유대인'이 주류로 급부상한 이유는?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8-26 06: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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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최로엡 화백
삽화=최로엡 화백

유대인 사회의 인식혁명 4단계

 아웃사이더였던 유대인 사례를 통해 보면 인지혁명의 4단계 구조는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9세기 중반 이후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난 유대인의 급속한 부상은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난 후부터 19세기 이전까지는 유대인 중에 특별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학자인 아이작 디즈레일리 (1766~1848)는 유대인 역사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유대인 중에는 특별히 기억해야 할 천재성이나 재능을 지닌 인물이 없다. 천재라고 해봐야 유대 역사를 통틀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10세기란 긴 세월 동안 유대인은 위대한 인물을 고작 열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일반인의 평가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은 유대인의 사회적 위치와 삶이 늘 비참하고 불안한 상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안전을 갈망하며 살아남는 게 최우선일 정도로 고달픈 삶이었다.

 아웃사이더 유대인

 간략히 유대인 역사를 정리해보자. 유대 민족은 기원전 14세기에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대이동을 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했다. 기원전 900년경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을 유대인 역사상 최대 왕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의 사후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반목하다가 이스라엘은 아시리아(기원전 722년)에, 유다는 신바빌로니아 (기원전 586년)에 멸망했다. 이후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하스몬 왕조가 잠시 독립 국가를 이루었으나 기원전 63년 로마에 점령됐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꾸준히 항거했지만 서기 66년 1차 독립항쟁에 실패한 데 이어 132년 재차 펼친 독립항쟁도 실패했다.

 이 시기에 로마는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여 각처로 흩어지게 했다. 잔인한 운명이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자기 땅에서 뿌리뽑혀져 흩어지 게 한 것이다. 8세기경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이 유대인에게 관용적인 정책을 펼치자 대거 몰려와 무역에 종사하며 유대교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1492년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은 또다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들은 알거지 상태로 몸만 빠져나와 북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그리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이주했다. 그래도 벨기에에서는 보석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을 누르고 세계 무역을 장악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또한 영국의 명예혁명을 지원하여 영국에도 대거 이주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게토라 불리는 제한된 별도 거주지에 유대인을 격리했다.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그야말로 빈번한 학살과 추방 등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상황이 계속됐다. 이토록 험악한 상황에서 재능을 펼치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남는 것만도 신의 가호와 적지 않은 행운이 필요했다. 이후 유럽에 계몽주의 바람이 불어오고서야 유대인에게 아주 작 은 기회가 주어졌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정신으로 대혁명을 일으킨 프랑스에서조차 유대인의 차별이 폐지되고 시민으로서 공인받기까지 오랜 과정을 거쳤다. 1791년 9월 27일 프랑스 의회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할 때까지 프랑스 법규는 유대인들에게 주로 고리 대금업과 행상만을 직업으로 허용해주었다.”

  프랑스 국민회의에서 ‘유대인 해방’의 지지자조차 조건부 해방을 주장했다. 개인으로서의 유대인에게는 모든 권리를 부여하지만 민족으로서의 유대인에게는 어떤 권리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으로 평등한 권리를 부여했지만 이후에도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대인 수를 제한하자라든가 축출하자는 소수 의견은 여전했다.

 이런 상황은 100년 뒤인 1894년 드레퓌스 대위 사건으로 폭발한다. ‘유대인을 죽여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유대인을 습격하고 유대인이 경영하는 상점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짓밟았다. 영국의 유대인은 영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1845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천재들이 나온단 말인가. 나라를 잃고 난 후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은 이등 국민으로서 제대로 된 직업이나 거주의 자유를 갖지 못했다. 물론 정규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열악한 상태에 있었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금지됐던 고리대금업으로 성공한 일부 유대상인들이 있었다.

 “이때까지 유대인은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온 샤일록처럼 돈만 아는 무식함의 상징이었다. 차별 철폐와 평등을 주장하던 프랑스 계몽주의자 볼테르(1694~1778)와 디드로 (1713~1784)조차 유대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했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유대인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오로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탄생으로 금융자본이 권력을 장악한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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