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안전문화 정착, 30년 전 도쿄대 교수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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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안전문화 정착, 30년 전 도쿄대 교수의 조언

이데일리 2025-08-26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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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재 을지대 대학원 안전보건시스템학과 교수] 오래전 이야기다. 1994년 10월 서울의 한강 다리가 끊어졌다. 등굣길 여고생 등 32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가 있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1995년 6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이 무너졌다. 시민과 매장 직원 등 502명이 무너진 콘크리트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성장중심 경제의 숨겨진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필자는 모 TV 방송국에서 긴급 기획한 안전 프로그램 제작진의 일원으로 일본과 독일, 미국의 안전문화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일본 도쿄대를 방문했을 때다. 당시 건설전문가로 명성을 얻던 한 교수에게 한국의 건설 안전 문화를 정착시킬 방안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망설임 없이 “서울에서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은 건물 하나를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부숴 버려라. 그러면 부실공사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안전을 지키지 않고 불법으로 얻은 이익보다 사고 후 감당하기 어려운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0년 동안 잊고 있던 도쿄대 교수와의 만남이 다시 생각난 것은 지난 7월 29일 산업재해 사망 감소 관련 국무회의 때문이었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예고도 없이 생중계되는 것도 사상 처음이었지만 주제가 산업재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대통령은 “일하러 나간 일터에서 안전 소홀로 사망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하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고 용인되지 않도록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노동자의 사망 위험을 감수하는 게 기업의 이익이 돼서는 안 된다”며 “안전을 포기해 아낀 비용보다 사고 발생 시 지출하는 대가가 더 커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전 일본 교수에게 들었던 안전해법과 너무도 닮아 소름마저 돋았다.

‘산재사망 감소 원년’의 선포는 원청에서 하청으로 다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위험의 외주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을 회피하는 경영방식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인내가 임계점(critical point)에 달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대통령은 세계 10대 경제국가이자 문화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매년 2000명이 넘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국무회의 발표 이후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안전을 실천해야 할 기업도, 감독해야 할 정부도 해법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까지 속으로 곪아 있던 안전문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과거와 다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발표 이후 정부가 대대적인 불시 감독에 나섰다. 그러나 감독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보이는 부분만 개선하거나 위험을 숨기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다른 법과 충돌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정합성과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 그리고 현장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파격적인 발표만큼 파격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자율적으로 안전을 지키기가 어려운 중소기업에 대해 사망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고위험 항목 10가지 정도를 사전에 정해주고 지키도록 하는 ‘고위험 핀셋 감독’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사망사고 감소를 위한 예방 활동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대한 점검은 무작위 불시 감독을 통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면 ‘재수가 없어 나만 처벌 받는다’는 불만도 줄이고 사망사고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휴가를 다녀온 대통령의 첫 지시가 ‘산업재해 사망 신속 보고’였다고 한다. ‘저는 한다면 한다’는 평소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디 이번이 산업재해 사망자를 줄이고 우리 사회의 안전 감수성을 높이는 마지막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안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자. 안전은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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