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찬탄(탄핵 찬성) 세력 포용’과 ‘반탄(탄핵 반대) 세력 결집’이라는 뚜렷한 대립 구도로 치닫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외연 확장을 앞세워 찬탄파 표심을 끌어안으려는 반면, 장동혁 후보는 반탄파 지지층을 모아 선명성으로 승부를 건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거부하면서, 당 쇄신보다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치는 단순한 구호와 충성 경쟁이 아니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조직하고 확장하느냐의 기술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결선에서 맞붙은 김문수·장동혁 두 후보의 전략은 ‘찬탄으로의 확장’과 ‘반탄의 결집’이라는 상반된 문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찬탄 포용’으로 확장 노린 김문수
김문수 후보는 결선에 돌입하면서 “GO TOGETHER(함께 가자)”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반탄파 내부 결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찬탄 세력까지 흡수해 보수 전체를 묶어야 대여 투쟁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는 결선 진출 직후 안철수 의원을 직접 만나며 통합 메시지를 강조했다.
안철수 의원과의 회동은 단순한 제스처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찬탄파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안 의원과의 만남은 김 후보가 외연 확장을 본격화하려 한다는 신호였다. 김 후보는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일대오”라며 분열된 당을 통합할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TV토론에서도 김 후보의 전략은 드러났다. 그는 한동훈 전 대표를 “당의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차기 선거에서 공천을 약속하듯 언급했다. 이는 반탄파의 강경 기조와는 다른 유연성을 보여준 사례다. 찬탄 세력을 포용하겠다는 명확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김문수의 노선은 ‘확장형 보수’로 규정된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이 최악을 피해야 한다”며 결선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당내에서는 이 발언이 사실상 김 후보에 대한 지지 신호로 해석된다. 김 후보가 찬탄 세력과 반탄 세력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구도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탄 결집’ 선명성 내세운 장동혁
장동혁 후보는 김문수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찬탄파를 “내부 총질 세력”으로 규정하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매일신문 유튜브 인터뷰에서 그는 “탄핵 때처럼 당론을 어긴 사람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찬탄 세력을 통합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태도는 반탄파가 이미 당 내 주류로 부상한 현실을 반영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과 청년최고위원 당선인 다수가 반탄 성향인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장 후보는 이러한 기류를 발판 삼아 “반탄파 결집”을 통해 결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굳혔다.
장 후보의 배경에는 극우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세력과 연결된 유튜버들, 전한길 씨를 비롯한 강성 반탄 인사들이 장 후보의 지원군으로 나서면서, 장 후보의 ‘강성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반탄파의 적통 대표’라는 프레임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김문수의 포용 전략에 대해서도 장 후보는 거센 비판을 가했다. 그는 “결선에 올라왔다고 표 계산을 위해 입장을 바꾸는 것은 당대표 자격이 없다”며 김 후보의 행보를 신뢰의 문제로 몰아붙였다. 과거 김 후보가 대선 단일화를 번복했던 사례까지 끌어내며 신뢰성 부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통된 ‘윤석열 단절 불가’
대여 투쟁 전략에서도 두 후보는 결을 달리한다. 김문수는 “찬탄·반탄 가릴 것 없이 광장 투쟁으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장동혁은 “원내 의원들이 중심이 돼 국회라는 제도권에서 맞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투쟁 방식에서 ‘광장 대 국회’의 대비를 보여준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여기까지였다. 두 후보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은 선택지에 올리지 않았다. 김문수는 “윤 전 대통령이 복당을 신청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장동혁은 “직접 면회를 가겠다”며 관계 복원을 강조했다.
이 같은 태도는 국민의힘 내부에 깊게 뿌리내린 ‘찬탄 대 반탄’ 구도와 맞물려 있다. 반탄파가 주류를 차지한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생존의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당 쇄신을 기대했던 일각의 눈에는 퇴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친한동훈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당대표 선거 이후 탈당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당의 미래를 우려했다. 이 발언은 두 후보 모두 윤석열과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한,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은 요원하다는 비판을 대변한다.
이재명 대통령, “대화는 불가피”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행 전용기에 오른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야당 대표가 법적으로 선출되면 반드시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여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며, 야당 지도부가 누구든 국민이 선출한 만큼 대화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강경 입장과 확연히 대비된다. 정 대표는 당선 직후 “사과 없는 야당과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 대통령은 “힘들더라도 대화는 당연히 해야 한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역할 차이를 분명히 했다.
지지율 하락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영향을 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곧이어 “정치는 인기영합이 아니라 국민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과정”이라며 단기적 지지율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대립적 구도 속에서도 ‘국민 대표’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문법을 보여준다.
결국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힘이 반탄 일색으로 재편될 경우에도 통합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여야 그리고 정부의 정치 문법이 어디서 교차하고 충돌할지, 앞으로의 정국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결선의 문법, ‘확장 vs 결집’
김문수의 ‘찬탄 확장’과 장동혁의 ‘반탄 결집’은 단순한 전략 차이가 아니다. 한쪽은 외연 확장, 다른 한쪽은 강성 결집으로 권력을 조직하는 방식의 문법이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윤석열 단절 불가’라는 공통된 한계 속에서 국민의힘은 쇄신보다는 퇴행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과의 대화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다른 정치문법을 작동시키고 있다. 정당 내부의 권력 다툼과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이 교차하면서, 정치의 언어와 행위가 어디로 향할지는 결선의 표심과 이후 권력의 흐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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