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정부와 이동통신사가 인공지능(AI) 기술로 맞서고 있다. 피해를 사전에 막기 위한 실시간 탐지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으며 데이터 공유와 기술 협업을 통한 방지 체계도 본격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AI 기술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기술 윤리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이 AI 기술을 악용해 빠르게 진화하면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 발생한 보이스피싱 건수는 1만2000여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른 피해 금액은 약 6400억원으로 전년보다 98%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일 KT 광화문 사옥에서 과기부 배경훈 장관 주재로 보이스피싱 대응 간담회를 열고 통신 3사와 함께 AI 기반 탐지 기술 개발 및 데이터 공유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보이스피싱은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며 “AI가 보이스피싱을 진화시키고 있는 만큼 단기 처방이 아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AI 기술은 해킹과 피싱 등 사이버 범죄 수법을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업계 분석이 나왔다. 특히 개발 속도 면에서 과거 해킹 코드나 보안 프로그램 개발에 3~7일이 걸렸던 작업을 이제는 AI를 활용해 1시간 내로 완료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랜섬웨어 협박 메시지나 피싱 문자를 AI가 매우 그럴듯하게 작성해주고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보이스피싱도 가능해졌다”며 “AI는 완전 자동화된 해킹 도구라기보다는 해커가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속이고 더 빠르게 공격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기업도 AI 기술을 활용한 피싱 예방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과기부는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KT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기범의 동의 없이도 음성 데이터를 수집·활용할 수 있도록 실증 특례를 부여했다.
이를 기반으로 KT는 지난달 30일부터 ‘AI 보이스피싱 탐지서비스 2.0’을 상용화했다. 이 서비스는 실제 범죄자의 음성 데이터를 분석해 음성의 특징을 추출하고 AI로 변조된 딥보이스까지 식별할 수 있다. KT는 해당 서비스를 금융권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과 연계해 의심 거래 발생 시 계좌를 즉시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탐지에서 대응까지 실시간 연동이 가능한 협력 체계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SK텔레콤은 2021년부터 경찰 신고 기반의 보이스피싱 전화번호를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향후 AI가 생성한 딥보이스를 탐지하는 기술도 도입할 계획이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LG유플러스는 보이스피싱 탐지 전용 앱 ‘익시오(ixi-O)’를 통해 ▲통화 중 위험 감지 ▲악성 앱 탐지 ▲긴급 알림톡 발송 등 통합 대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대표는 AI 시대에서 도래하는 ‘제로 프라이버시’ 현실의 심각성이 개인정보 유출 및 피싱 사례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오 대표는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무의식적으로 수집되는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활용되는지 국민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단순한 유출 문제가 아닌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권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보지 않고 인권 중심의 기술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도 기술 진보와 인권 보호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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