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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법집행기관들은 ‘범죄 감소’(crime reduction)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범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는 대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범죄율을 낮추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한다. 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혜다.
‘척결’이라는 용어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비현실적 목표 설정의 문제다. 인류 역사상 어떤 사회도 범죄를 완전히 척결한 적이 없다. 범죄는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욕망, 사회적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용어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도 한다. 항상 ‘척결’을 외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강한 표현이 부족해진다.
역치 상승의 부작용도 있다. 지속적으로 강한 표현에 노출된 국민은 점차 이에 둔감해진다. 유튜브에 난무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면 그 부작용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보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해야만 관심을 끌 수 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성과 평가의 왜곡을 초래한다. ‘척결’을 목표로 설정하면 실제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범죄의 발생률을 50% 줄였다면 이는 훌륭한 성과이지만 ‘척결’이라는 절대적 기준으로는 실패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정책 담당자들로 하여금 통계 조작이나 과도한 단속에 의존하게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반면 감소라는 단어는 비록 수사적 힘은 약할지라도 실질적인 정책 도구로서 훨씬 유용하다.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이 가능하다. ‘30% 감소’, ‘전년 대비 20% 감소’ 등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이는 정책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범죄 사건을 다뤘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범죄는 사회의 복합적 문제가 표출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빈곤, 교육 기회의 부족, 사회적 불평등, 가정 해체,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범죄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절도범의 상당수는 경제적 궁핍이 직접적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마약 사범의 경우 중독이라는 질병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가정 폭력은 세대 간 전승되는 폭력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복합적 원인을 지닌 문제를 단순히 ‘척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척결’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때로는 과도한 처벌이나 인권 침해의 위험도 있다. 적정한 수준에서 효과적으로 범죄를 억제하고 감소시키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에 더 부합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한 현실주의다. 범죄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키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더욱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접근이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묵묵한 성과로, 극단적 목표보다는 지속 가능한 개선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법 집행기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유튜브에는 사이다 같은 발언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현실 세계에 사이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산업재해 문제도 접근하면 어떨까 한다. 건설현장 재해에는 복합적 요인이 있다. 민관이 합동으로 그 요인을 줄이다 보면 산업재해도 따라서 감소할 것이다. 산업 현장의 인권은 그렇게 지켜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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