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16일,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한 정부 병원에서 니파 바이러스 격리 센터에서 발생한 생물학적 위험 폐기물을 처리하는 의료 종사자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아시아 지역의 생태계를 흔들면서 박쥐의 서식지가 넓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이동이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과일박쥐가 옮기는 니파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대 75%에 달하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백신이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확인된 사례는 이러한 우려가 단지 이론적 가능성이 아님을 경고하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그 희귀성에 가려져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만 2001년 이후 350건 미만의 사례가 보고됐지만, 한번 발병하면 10명 중 7명이 목숨을 잃는다. 인도 남부 케랄라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과 말레이시아 돼지 농장에서 비롯된 확산 사례는 인간과 가축, 그리고 박쥐가 맞닿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기후 변화가 인간을 더운 지역에서 서늘한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동시에 박쥐의 범위를 넓히는 상황은 감염 가능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요인이 된다.
과일박쥐는 니파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감염원을 조기 식별하기 어렵게 만들며, 첫 번째 인간 환자가 나타나야만 발병 사실이 확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후 스트레스가 박쥐의 바이러스 배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호주의 사례에서는 폭염이 헨드라 바이러스 배출 빈도를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는 니파 바이러스에도 유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온다. 결국 기후 변화는 단순한 온도 상승 문제가 아니라, 박쥐와 인간 사이의 위험한 경계를 허물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대추야자 수액 음용 문화 역시 감염 위험을 키운다. 수액 항아리가 박쥐 타액이나 소변으로 오염되면서 주민들은 무심코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이를 막기 위한 ‘안전한 수액’ 이니셔티브가 있었지만, 주민들의 인식 부족과 무관심으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나는 항상 마셨지만 아픈 적이 없다”는 말은 니파와 같은 희귀 질환이 예방의 벽을 허물고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다.
백신 개발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옥스퍼드 대학과 협력한 백신은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방글라데시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발병 건수가 너무 적어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고, 희귀 질병이라는 이유로 접종 수요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점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더구나 농촌 지역 주민에게 백신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정부 보조금과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진정한 해답은 환경 보존에 있다고 강조한다. 돼지 농장이 박쥐 서식지 옆에 들어서거나, 개발로 인해 인간이 박쥐와 가축을 동시에 마주하는 구조 자체가 반복되는 한, 백신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무분별한 개발이 종간 접촉을 강제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니파뿐만 아니라 더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은 시간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인간 사회의 방심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글로벌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 니파가 아직 사람 간 전염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돌연변이를 통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기후 변화와 인간의 이주, 그리고 환경 파괴가 맞물리면 이 바이러스는 새로운 팬데믹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팬데믹 예방의 핵심은 단순히 백신과 치료제에 투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삼림 벌채와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고, 인간·가축·야생동물 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방에 드는 비용은 발병 후 대응에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보다 훨씬 적다. 기후와 환경을 지키는 일이 곧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백신인 셈이다.
니파 바이러스는 여전히 드문 질병이지만, 기후 변화 시대에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가 달라지는 순간, 그 작은 균열 속에서 새로운 팬데믹이 싹틀 수 있다. 오늘 우리가 환경 보존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건 이슈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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