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한국 재계의 핵심 총수들이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워싱턴DC에 총집결했다. 이번 방미는 단순한 외교 수행이 아니라 미국 내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분야 현지 투자를 가속화하고, CHIPS법·IRA 등 정책 인센티브와 맞물린 ‘실질적 성과전’의 성격이 짙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떤 실행 전략을 보여줄지가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출국 현장과 경제사절단 드림팀
24일 낮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 주요 그룹 총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며 출국길에 올랐다.
가장 먼저 도착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열심히 할게요”라는 짧지만 힘 있는 한마디로 이번 일정의 무게를 요약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여유 있는 미소로, 구광모 LG 회장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도 차분히 대열에 합류했다. 표정과 태도는 달랐지만, ‘의전이 아닌 실행’이라는 공통된 기조가 뚜렷했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는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현지 합류 예정)을 비롯해 조원태 한진 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이재현 CJ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재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한국 기업들의 방미가 단순한 외교 행보를 넘어 투자·사업 확장의 신호탄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반도체·배터리, 현지화와 내재화 가속
관심의 초점은 추가 투자 발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입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 및 연구개발(R&D)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미 상무부 반도체지원법(CHIPS Act) 기금에서 최대 4억5800만달러 지원을 확정받았다. 미 정부가 국가 첨단패키징 프로그램(NAPMP)에 14억달러를 배정하면서, 메모리 후공정 라인 확장은 AI 서버 수요와 맞물려 핵심 전략 카드로 부상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홀랜드에서 북미 최초 대규모 ESS용 LFP 셀 양산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생산을 넘어 ESS 시장 교두보를 확보하는 의미를 가진다. 향후 증설과 전구체·활물질 등 핵심 소재 내재화 프로젝트도 후보군에 올라 있다. IRA 세액공제 효과와 결합하면서 LFP 라인의 전략적 비중은 한층 커지고 있다.
◇완성차-배터리 동반 확장과 정책 인센티브
포드·SK온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켄터키에서 2025년 가동을 앞두고 있고, 현대차·SK온(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조지아 사바나) 합작 프로젝트도 속도를 내고 있다. 완성차와 배터리의 동반 확장은 단순 협업이 아니라 미국 내 EV 생태계 강화를 이끄는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책적 인센티브는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전자 텍사스(테일러) 단지에는 CHIPS법을 통해 최대 64억달러 보조금이 배정됐다. IRA 45X 생산세액공제는 셀 kWh당 35달러, 모듈 10달러, 핵심 소재 원가의 10%를 적용해 미국 내 생산 전환을 촉진한다. 이는 투자 효율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공급망 안정과 리스크 관리, 실행 메시지
정책 인센티브와 투자 확대는 공급망 안정과 대규모 수주 가시성 강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블루오벌SK 켄터키 단지의 노조 조직화 움직임, CHIPS 수혜 기업 지분 참여 검토 등 노동·정책 변수는 잠재 리스크다. 인센티브와 통제가 동시에 작동할 경우 기업의 전략적 대응력이 성패를 가른다.
이번 정상회담 계기 발표가 첨단 패키징·AI 메모리 증설, ESS·EV 배터리 업그레이드, 텍사스 파운드리 보강으로 이어진다면, 한·미 제조 파트너십은 ‘인센티브-공급망-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것이다. 반대로 리스크 관리가 미흡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결국 이번 방미에서 재계 총수들의 역할은 ‘의전 수행’이 아니라 ‘실행력 확보’다. 글로벌 공급망과 정책 인센티브의 교차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떤 실행 전략을 제시하느냐가 향후 성과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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