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3D펜 수업은 늘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곳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자리가 아니라 상상과 현실이 맞닿아 탄생하는 ‘창조의 순간’을 공유하는 무대다. 펜 끝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선이 공중에 머무르고, 그것이 차츰 형태를 갖추어 하나의 사물이 되어 눈앞에 놓이는 순간, 아이들은 숨을 멈춘 듯 바라보다가 이내 환하게 웃는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본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없던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서 태어났다는 경이로움이다. 수업의 주제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을 품고 있었다. 작은 반지를 만들며 아이들은 관계의 의미를 배웠다. 손가락을 감싸는 가느다란 고리 속에는 단순한 장식 이상의 마음이 담겼다. 꽃의 구조를 입체로 구현할 때는 교과서 속 그림이 손끝에서 살아 움직였다. 아이들은 한 장의 도감보다 훨씬 깊이 있게 꽃을 이해했고, 그것을 만들며 자신들의 지식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독도를 모형으로 세워 올리는 순간, 아이들의 손끝에는 작은 작품을 넘어서는 거대한 자긍심이 피어올랐다.
나는 예술가로서 늘 ‘표현’을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표현은 내 작업실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에게 3D펜은 새로운 언어였고, 그 언어는 서툴지만 진실했다. 비뚤어진 선, 울퉁불퉁한 표면, 쉽게 부러지는 구조 속에서 오히려 나는 가장 순수한 창조의 힘을 보았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마치 초봄의 새싹이 흔들리며 자라듯, 아이들의 상상력도 불안정한 선 속에서 자라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실은 작은 작업실이 되었고, 아이들은 어린 예술가로 변모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교과서의 정답을 따라가는 학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곁에서 안내자일 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 이는 나였다. 교육이란 결국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남기는 흔적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새겨준 것이다.
예술은 전시장 안의 그림이나 무대 위의 공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교실의 책상 위에서, 한 아이의 손끝에서, 아주 작은 형태로 피어난다. 그리고 그 작은 형태는 언젠가 커다란 꿈으로 자라난다.
3D펜 수업을 마치고 난 후에도 나는 종종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무엇인가를 처음 창조해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맑은 빛이었다. 예술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는 그 빛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것은 나의 작업과 수업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자 앞으로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세계는 곧 우리의 미래이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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