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86명 중 183명이 찬성했고, 반대한 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국민의힘은 전날부터 이어진 24시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 표결에 불참하며 법안 통과를 지켜봤다. 이번 통과로 한국 노사관계의 지형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청 책임 확대와 파업 범위 넓혀
개정안은 ‘사용자’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해 원청 기업에도 교섭 의무를 부과했다. 이로써 원청-하청 간 상당 부분 벌어진 권한·책임 불균형 해소가 기대된다.
합법 파업 범위도 ‘노동 조건 개선’에서 ‘경영진의 주요 결정’까지 확대됐다. 또한 합법 파업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청구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법 시행은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시작되며, 세부 시행령을 두고 또 다른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10년 만의 통과, 노동계 숙원 해결
노란봉투법은 2015년 쌍용자동차 사태 등에서 과도한 손배·가압류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국회에 처음 발의됐다. 하지만 재계와 보수 정치권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두 차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 이번 본회의 가결은 노동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온 제도가 처음으로 제도권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노동계는 “원청 책임이 명확해져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손배·가압류 제한 역시 장기간 법정 다툼 대신 신속한 권리구제 수단을 제공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갈등 격화, 경영 불확실성 확대”
재계는 우려를 드러냈다. 합법 파업 범위 확대가 노사 갈등을 격화시키고, 원청이 수십~수백 개 하청 노조와 각각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특히 경영진 의사결정이나 정부 정책과 연결된 ‘정치적 파업’이 늘어나면 사회적 비용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 국내 투자와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투자환경까지 흔들릴 수 있어
국제 투자환경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성명을 내고 “한국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며 “법 시행 과정에서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이 “파업이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한국갤럽, 8월 20~22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전문가들은 “노동권 강화라는 법 취지를 살리려면 국제 경쟁력과 조화를 이루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노동권·산업 경쟁력 충돌 불가피
이번 법안 통과는 ‘노동권 강화’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국면을 열었다. 정부와 국회가 시행령 구체화, 보완 입법, 노사정 협의 구조 마련을 통해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가 최대 과제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법은 노동권 보장을 제도적으로 진전시킨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산업 현장의 혼란을 어떻게 완충하느냐가 정책 신뢰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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