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6명 일터서 숨지는데..산재 못 줄이는 7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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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6명 일터서 숨지는데..산재 못 줄이는 7가지 이유

이데일리 2025-08-22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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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이데일리에서는 <산재 절반 줄이기 5년 로드맵 만들자> 기획을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지막 편에서는 산재 감축을 위한 전문가와 현장 안전 책임자들의 의견을 취합, 7가지 제언을 제시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감수했다.



◇ 산재 예방 기본인 사전위험성 평가부터

산업재해 예방 기본은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와 관리 체계의 확립이다. 단순히 규정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현장에서 위험요소를 식별하고 위험성 관리조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은 모두 가연성 자재 점검, 환기 미비, 화학물질 관리 소홀 등 기본적인 위험요인을 ‘사전 평가·관리’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다.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서는 일찍이 모든 사업장에 위험성 평가 및 결과를 문서로 만들어 현장 작업자까지 공유하도록 의무화했다.

각 현장별로 작업 전 ‘현장 자체 평가→구체적 대책 수립→문서화→근로자와 공유’의 과정이 필수다. 법령상으로는 미이행 시 과태료 부과까지 가능하다.

정부는 뒤늦게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가 위험요인을 발굴해 위험성을 평가·관리하도록 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2017년 1월 위험성평가 미이행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말라는 지침을 지방관서에 내려보내는 등 스스로 위험성평가 제도를 무력화한데 이어 2023년 5월에는 평가 목표 등 핵심적인 내용을 삭제해 위험성평가가 ‘속 빈 강정’이 됐다는 비판이 많다.

◇ 발주처를 현장 안전 총괄 책임자로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붕괴사고는 발주처, 시공사, 감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구조 속에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현재 대법원에서 원·하청과 감리회사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현 제도는 발주처가 사업 전반에 권한을 행사함에도 불구, 발주자의 안전총괄 의무에 대해 실효성 있는 규정과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가 빈약하다.

반면 싱가포르는 ‘산업안전보건법(WSH Act)’ 등을 통해, 발주자가 설계·예산·공정 전반의 안전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공사비·공사기간 등도 사전 보장돼야 착공이 가능하다. 위반 시 행정처분뿐 아니라 형사처벌도 받는다.

△발주자 실명제 △적정한 공사비·공기를 보장하는 장치 마련 △발주자의 의무를 실현할 수단과 구조가 갖춰져야만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 규제·법령 통합 정비해 규제 간소화해야

산업안전 관련 법체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진흥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여러 법률이 분산·중첩돼, 현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혼란이 적지 않다. 구의역 사고, 광주 학동 붕괴사고 등 모두 법규 미비가 아닌 미준수로 인한 사고다.

영국, 독일 등은 산업안전보건법을 기본법으로 사업주, 제조자, 도급인, 발주자, 소유자, 근로자 등 여러 의무주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실효성 낮은 중복규제를 대폭 정비하고, 현장 안전관리가 실효성 있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역시 규제의 간소화, 집행기관의 일원화, 그리고 의무주체 간 지위와 역할에 맞는 의무와 책임의 명확한 설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중소·영세업체 중심 맞춤형 지원 강화해야

산재는 상대적으로 안전관리 역량이 떨어지는 중소·영세·하청업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 827명 가운데서도 670명(81%)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건, 고양 버스터미널 환승센터 등은 하청업체가 작업자에 교육이나 보호장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참사가 발생한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중소·영세·하청업체의 안전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의 실정에 적합한 안전관리방법, 안전활동기법을 광범위하게 개발해 지속적으로 안내·홍보하고 지도하고 있다. 안전 선진국들은 기업들이 자율적인 재해예방활동을 활발하고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고 측면 지원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도 형식적 컨설팅·재정지원 수준을 넘어 역량 강화 중심의 지원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 현장 근로자 산재예방 참여와 의무 강화해야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를 ‘보호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근로자가 안전의 주체로 나서고, ‘신고·참여·교육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부과하고 보장해야 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근로자가 작업 중 위험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할 권리와 의무, 교육 참여, 안전수칙 준수의 책임을 모두 법적으로 부여했다. 고용주는 그 전제 하에 안전교육, 작업정보 공유, 근무환경 개선 의무를 부담한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견고하게 법에 심어져야 현장 개선이 실현될 수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보호대상이면서 의무주체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

◇ 산업안전감독관 적발자에서 지도자로

산재 예방의 마지막 방파제는 ‘현장 감독’이다.

그러나 한국 현실에선 여전히 ‘형식적 점검’과 단순 적발 위주다. 산재로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기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고용노동부의 감독이 전문성 없이 처벌에 치우치다 보니 기업의 안전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영국 보건안전청(HSE)은 감독관을 단순한 적발자가 아니라 현장 기술지도자, 업종별 전문가로 육성해 현장에 투입한다. 이들은 현장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개선안 설계를 돕는다. 문제가 발견될 경우 ‘지도→개선명령→형사처벌’ 단계로 감독한다. 한국도 감독관 전문성 확보, 직무교육 강화, 분야별 특화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

◇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 보장해야

무리한 공기단축, 최저가 입찰, 원가절감 압박은 결국 안전을 희생시키는 구조로 이어진다.

2022년 광주 아파트 붕괴, 2010년 부천 건설현장 추락사고는 모두 비용·기간 줄이기를 위해 안전을 도외시한 결과다.

영국은 설계·발주 단계에서 공사비에 반드시 안전 보장 비용을 명확히 산출해 반영하도록 했다. 발주자가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착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제도는 구조적으로 안전비용·기간이 충분히 확보돼야만 실제 공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안전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도록 했다. 한국 역시 발주자의 의무가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장치와 여건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반복되는 대형 참사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고들은 대부분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막을 수 있었다. △위험성 평가의 실효성 강화, △발주자 총괄책임의 법제화, △법·집행기관의 일원화, △중소현장 상시 지원, △근로자 권리·의무 균형, △전문 감독체계, △적정 공사비·공기 확보가 결합될 때, ‘5년 내 산재 사고 절반’은 구호가 아니라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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