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본 기사는 콜센터 노동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무언가 막혔을 때, 해결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든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존재, 바로 콜센터 노동자들이다. 가장 직관적이고도 신속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우리는 때로는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때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의 격한 감정과 날 선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유선 너머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일상의 균열을 묵묵히 메우고 있다.
땀의 기록 1. 조용히 넘어가기를 비는 하루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정작 나의 삶은 피폐하다. 작은 책상은 마치 감옥과 같고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은 제발 조용히 지나가길 빌고 또 비는 하루다.
2014년부터 서울 지하철 민원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기 시작해 현재는 관리자로 근무 중인 나, 최윤지(가명·41). 내가 속한 콜센터는 정원 28명으로, 서울 지하철 8개 노선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원에 대한 처리를 담당한다. 하지만 인력에 비해 업무량은 턱없이 많아 늘 과중한 상태다.
실제 근무 인원은 스케줄 근무제로 인해 하루 평균 12~13명에 불과하다. 우리 콜센터에 들어오는 하루 전체 상담 건수는 약 600건을 넘어간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당 처리해야 하는 건수는 50건 이상이다. 이를 주 5일 기준 1년으로 환산하면 개인별로 약 1만3000건에 가까운 상담을 떠안는 셈이다. 근무시간(8시간)으로 나누면 10분당 1건꼴로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상담 건수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지만 특히 더운 여름철처럼 민원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부담이 더욱 커진다. 더욱이 문자로까지 민원을 받고 있어 업무를 마치고 나면 목뿐만 아니라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아릴 지경이다. 이처럼 적은 인원이 수백 건의 상담을 감당하다 보니 법정 식사시간 외에 사실상 따로 쉬는 시간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센터에서는 직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도록 통화 중단 및 정리 시간을 일부 마련해 두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다녀오기 어렵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그 공백만큼 다른 직원들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가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밀려들어오는 민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질까 봐 아예 물 한 모금조차 삼가는 동료가 있고 감기에 어지럼증과 기침이 밀려와도 꾹 참고 자리를 지키는 선배도 있다. 거친 민원인의 말을 삼키며 눈물조차 감춰야 하는 후배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땀의 기록 2. 사막처럼 말라만 가는 목
작은 책상, 그리고 그에 꼭 맞춘 의자 하나. 우리는 그 자리에 몸을 맡긴 채 하루 8시간을 버텨낸다. 눈은 화면을 쫓고 입은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지만 몸 전체는 긴장감 속에 굳어 있다.
민원의 대부분은 지하철 이용 중 발생한 불편, 그리고 안전과 직결된 문제들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누군가의 위급한 순간과 연결될 수 있기에 우리는 늘 촉각을 곤두세운 채 전화를 받는다.
이에 목은 마치 사막처럼 메마르고 건조하다.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는 일상이 됐다. 약해진 목은 곧바로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감기 등 질병으로 이어진다. 말 그대로 목감기를 달고 사는 셈이다.
감기에 걸려도 쉽게 낫지 않는다. 왜냐, 감기 걸린 목으로 다음 날 출근해 같은 업무를 똑같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이 쉴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탓인지 센터 한편에는 늘 상비약이 놓여 있다. 감기약, 진통제, 소화제 등등. 하지만 약통은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치료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한 일종의 ‘작업 준비물’에 가깝다.
문제는 목 안쪽만이 아니다. 한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 매사 긴장을 놓지 못한 채 전화기 너머의 불만과 분노를 감당하는 우리의 몸은 온통 굳어간다. 상담이 끝나고 퇴근길에 오르면 목부터 시작해 어깨, 그리고 허리까지 잔뜩 굳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짓누르는 통증이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상반신 전체를 지탱하는 근육들은 고통스럽게 뭉쳐 있고 그 뭉침은 마치 하루 종일 꾹 눌러온 감정을 몸이 대신 드러내는 것만 같다.
땀의 기록 3. 온갖 통증으로 잠식당한 몸
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어느새 온몸을 잠식해 간다. 수백 건에 달하는 문자 민원을 일일이 확인하고 정확하게 응답하기 위해 손가락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작은 화면과 키보드를 들여다보며 손끝으로 민원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리고 저려온다. 근무 중간마다 손가락을 주물러보지만 그건 잠깐의 위안일 뿐이다. 통증은 자비 없이 다시 찾아온다.
이처럼 손가락에 가해지는 반복적이고 미세한 부담은 결국 ‘방아쇠 수지(Trigger Finger)’라는 질환으로 나타난다. 이는 손가락을 굽힐 때 사용되는 굴곡건 조직에 염증이 생겨 손가락이 걸리듯 움직이지 않거나 심한 경우 통증으로 아예 구부리거나 펼 수 없는 질환이다. 많은 동료들이 이 증상을 겪고 있다. 손가락 관절이 굳어지고 뻣뻣해지며 마치 안에서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게 분명하다.
문제는 손가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휴게 시간은 하루 1시간, 그 외에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콜센터 업무 속에서 우리는 장시간 같은 자세로 고정돼 있다. 불편한 자세로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반복해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동안 어깨는 뻐근해지고 팔과 허리에는 점차 통증이 쌓인다. 한 자세로 온몸을 긴장한 채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증은 뿌리처럼 깊어지고 회복은 더뎌진다.
이런 누적된 신체적 고통은 단순한 휴식만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퇴근 후 몸을 눕혀도 개운함보다는 뻣뻣한 통증이 먼저 찾아온다. 결국 모든 근골격계 질환은 일터에서의 긴장과 피로를 몸이 고스란히 떠안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고통은 매일 아침 다시 그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또다시 시작된다.
땀의 기록 4. 감정노동자의 설움
단순히 신체의 통증만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루에도 수많은, 얼굴도 모르는 민원인들의 고충, 불만 더 나아가 욕설과 비방까지 들어야 하는 우리다. 수화기 너머로 날 선 언어가 날아들 때면 마치 심장이 떨리고 머리가 핑 도는 듯한 현기증을 느낀다. 문제를 즉각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루 접수되는 민원 중 90%가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다. 이미 극도로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전화를 거는 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죄송합니다”라는 말 뿐이다. 그리고는 이들이 더 불편하지 않게 우리는 신속하게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물론 합리적인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민원인도 있다. 그러나 일부 ‘악성 민원’이 남긴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고 오히려 더욱 머릿 속을 잠식한다. 좋았던 기억마저 지워버릴 정도로 말이다. 특히 인신공격 수준의 말을 듣는 경우도 많다. “넌 인간도 아니다”, “너 같은 건 죽어야 돼”, “자살 충동 들게 만든다” 등이 그 일례다.
우리는 민원을 해결하는 노동자이지, 감정을 걸러내는 기계가 아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의 날카로운 말들로 가슴속 깊이 상처가 파였다. 관리자로서 지켜보면 이미 눈물을 삼키며 버티는 동료가 허다하다.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이들도 적지 않다.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현실 속 악성 민원을 완전히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오늘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선 너머에서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마음속 깊이 삭히며 업무를 이어간다. 이 순간만큼은 불편한 자세로 반복되는 육체의 피로보다 상대의 분노와 상처를 떠안는 마음의 고통이 더 깊고 크다.
땀의 기록 5. 자기희생이 미덕인 일터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속에서 산더미 같은 업무를 감당해야 한다. 하루종일 다른 이들의 불만과 호소를 듣고 있자면 어느새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만큼 깊이 공감한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동료가 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이 때문에 쉬고 싶어도, 아파도 꾹 참는 ‘자기희생 문화’가 굳어져 버렸다.
우리가 병원에 가는 건 심하게 아파 도저히 못 버틸 때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겨우 반차를 쓰거나 휴식시간에 병원에 다녀오곤 한다. 연차를 쓴다고 해도 내가 빠진 만큼 다른 직원들이 고생한다는 걸 아니까 우린 서로 쓰지 못한다. 자기 몸 챙기기보다 일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게 일종의 족쇄 같다. 마음 편히 쉰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나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 더 애쓰게 됐다. 악성 민원인 관련 고소 절차를 함께 밟거나 병원에 동행하는 등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한 험난한 과정에도 함께했다. 나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그 동료가 다시는 웃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내 작은 움직임이 우리 노동환경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헌신이 이어지면 결국 스스로를 돌볼 시간과 힘은 점점 사라진다. 나처럼 센터장과 같은 관리자가 상담사 경험을 갖고 있어야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고 인력을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희생이 미덕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이라는 절박한 요구가 콜센터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땀의 기록 6. 차별과 소외 대신 ‘존중’으로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들이 있다. 첫째, 우리들은 악성·강성 고객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뱉는 날 선 언어와 비방을 오롯이 감내하고 스스로 치유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둘째, 상담사들이 하는 일에 비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 복리후생 모두 부족하다. 하루하루 고강도 업무가 이어지지만 저임금은 업계에 고착화돼 있다. 민간 위탁, 외주화 등 열악한 고용구조, 간접고용으로 전체 콜센터노동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민간위탁도 최저낙찰 등을 하면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고 있다.
셋째, 회사는 과도한 실적 경쟁을 부추겼고 이는 우리들에게 정신적·육체적인 상처로 돌아왔다. 서열화된 이름들을 볼 때다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넷째, 정확한 상담과 민원 해결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은 체계적으로 제공되지 않았다. 우리는 간단한 교육만을 받은 뒤 바로 현장에 투입됐는데, 이는 결국 업무의 미숙함으로 이어졌다. 수화기 속 민원인의 답답한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문제들의 뿌리는 차별과 소외였다. 이는 모두 정부와 정치, 기업이 합심해 만든 민간위탁 즉, 아웃소싱(Outsourcing) 제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분명 같은 회사 건물 안에서 원청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사기업에는 콜센터(고객센터)가 있다. 고객을 만나는 최전선이자 불편을 해소하는 든든한 창구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물으면 난 고민없이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라도 콜센터 상담사의 처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인력 충원 등을 통해 휴식을 보장받는 근무환경, 악성 민원으로부터의 실질적 보호 장치, 공정한 임금과 복리후생, 체계적인 교육·훈련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이 직업이 사람을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 전문성과 보람이 살아있는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는 긴 시간 견뎌왔다. 변화를 위해 노력한 만큼 지금은 과거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오늘도 나는 차별과 소외에서 완전히 벗어나 모든 콜센터 노동자가 존중받고 모두가 웃으며 수화기를 들 수 있는 그날을 그려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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